명불허전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은 이제 할리우드의 품질보증마크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는 명배우이자 명감독인 그가 만들어낸 교과서 같은 영화다. 잘 만든 스포츠영화이고, 뛰어난 정치영화이며 동시에 훌륭한 휴먼스토리다. 친절하고 사려 깊고 유머러스한데다 인류애까지 끌어안고 있다.
대립을 조화로 바꾸는 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공자님 말씀으로 도배돼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를 봐야 한다” “이제 다 용서해야 한다” “권력에 집착하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그들이 아끼는 것을 뺏으면 서로를 불신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입에 올리기는 쉽지만 몸이 따라가긴 힘든 말들이다. 명심보감에나 나올 만한 말들이 쏟아지는데도 영화는 졸리지 않다. 아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믿기지 않을 이 영화 속 이야기는 거의 모두 실화이니까. 더군다나 성인군자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 갈등의 골을 메운 사람은 27년 세월을 옥살이로 보낸 사람이니까.
배경은 19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이 종식되고, 흑인의 영웅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백인들은 “테러리스트 만델라”라고 이죽거리며 “백인을 다 쫓아낼 것”이라고 탄식한다. 역시나 국기가 달라지고 국가가 바뀐다.
국민의 대다수인 흑인들은 백인정권의 상징이었던 국가대표 럭비팀 ‘스프링 복스’에도 칼을 대려 한다. 팀 이름을 바꾸고 유니폼 색깔에도 변화를 주려 한다. 하지만 만델라는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프링 복스의 존속을 관철시킨다. 백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서로에 대한 복수심만 커질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만델라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스프링 복스를 발판 삼아 국민통합의 꿈까지 이루려 한다. 럭비팀 주장 프랑소와(맷 데이먼)를 초대해 자신의 의중을 내비친다. 그의 지원을 받은 백인 팀은 나라 전체의 팀이 되고 1995년 럭비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연륜으로 빚어낸 ‘유기농 영화’
특별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 연출은 특출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기 좋은 가공식품이 아닌, 밭에서 막 따온 볼품없는 유기농 식품처럼 다가온다. 허술하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는 정직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걸출한 이야기에 정교한 영화적 장치들을 숨겨 감동을 배가시킨다. 이 영화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륜이라는 무공해 양념으로 대중을 유혹한다.
이스트우드는 줄곧 대조적 장면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뚜렷이 한다. 깔끔한 잔디 위에서 럭비 연습을 하는 백인들 너머로 맨땅에서 축구를 하는 흑인들이 보인다. 백인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 여가를 즐기고 흑인은 그들을 돌본다. 백인의 우월적 지위나 흑인의 비참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동화될 수 없는, 태생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그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장면들이다.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만델라와 프랑소와의 위치도 눈여겨볼 대목. 흑인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만델라는 럭비 팀과 관련해 흑인 참모들의 잇단 반대에 부딪히고, 백인 선수들을 이끄는 프랑소와는 만델라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둘의 노력은 화합이라는 기적을 만든다. 팀이 일군 성적은 그 기적의 상징일 뿐이다. 럭비라면 침을 뱉으며 증오를 드러내던 흑인들이 럭비에 열광하고, 백인들은 경멸의 대상이었던 흑인들을 포옹한다. 영화는 그렇게 소수의 행동하는 지도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호소하려 한다.
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82회 아카데미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모건 프리먼), 남우조연상(맷 데이먼) 후보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4일 개봉, 전체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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