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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드골의 길과 MB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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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드골의 길과 MB의 길

입력
2010.03.0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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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화국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중단한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1969년 4월28일 0시 10분 짤막한 성명을 통해 대통령직 사퇴를 발표했다. 전날 상원의 개혁과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걸고 실시했던 국민투표에서 찬성 47% 대 반대 53%로 패배했음이 확인된 직후였다.

2차 세계대전 구국의 영웅인 드골은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개헌으로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뒤 중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재신임과 연계한 국민투표로 난관을 돌파했다. 집권 후 프랑스를 부강하게 만들고 대미종속을 거부하면서 동서 냉전 시대에 국가 위상을 강화시킨 그에게 국민들이 열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투표로 퇴임 자초한 드골

그러나 1969년의 상황은 달랐다. 전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 속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탈권위주의와 다양한 욕구 분출의 시대가 왔다. 드골은 68년 5월 혁명에서 극적으로 분출된 이 같은 변화에 맞서 상원 개혁을 통한 의회 통제,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중앙집권 강화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냉담한 여론과 측근들까지 등을 돌린 상태에서 국민투표를 강행한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드골은 자신의 발로 엘리제궁을 걸어나온 뒤 회고록 완성에 힘쓰다가 1년 반 만인 1970년 11월 심장마비로 80년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논란 많은 세종시 국민투표를 강행한다고 해도 드골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헌정 중단과 같은 정치불안 사태를 원치 않는 우리 국민의 보수적 경향에 비춰 웬만해서는 패배하지도 않을 것이다. 패배한다 해도 심각한 레임덕은 피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통령직을 내놓을 이유는 없다.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패배 시 사임이 불가피한 위기상황으로 몰릴 것이 두려워 국민투표를 강행하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국민투표를 밀어붙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경우 이 대통령은 명시적은 아니더라도 패배하면 물러나겠다고 강력히 암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로 끌고 간다는 것은 국민을 협박하는 의미가 강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초 측근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대국민 협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 내 중도 친이계로 분류되는 고승덕 의원이 잘 지적한 대로 헌법에 국민투표의 효력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면 세종시 국민투표는 확대 여론조사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 정도밖에 의미가 없는 일에 국가를 뒤흔드는 심판을 받겠다고 나설 필요가 없다는 말도 맞다. 밴쿠버 영웅들의 감동적인 활약으로 모처럼 정신과 마음이 맑아진 국민들에게 국민투표 대상이 되니 안되니 어려운 헌법 공부를 강요해 가며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

모든 현안을 삼켜버려 사실상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고 있는 세종시 논란을 더 끌어갈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매듭 짓고 빠져나갈 출구가 절실하다. 그러나 헌법 부합 논란과 정파간 갈등, 지역간 이해대립 등을 감안할 때 국민투표는 출구가 아니라 새로운 대립과 갈등의 입구이기 십상이다. 그 잠재적 파장이 어떤 쓰나미로 현실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50%대에 근접하는 지지도에 자신감을 갖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로 정치적 자산을 회복했다면 '모 아니면 도' 식의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 기여한 지도자 되길

국민투표는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권한이지만 대화와 타협, 설득과 양보라는 민주주의 절차를 뛰어넘으려는 권위주의의 음습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의가 아무리 좋아도 절차를 충족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도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이 대통령은 '현재' 국민투표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래'에도 국민투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의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국민투표로 정치적 자살을 택한 드골과는 다른 이 대통령의 길이 되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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