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빙상은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을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거뒀다. 같은 대회에서 빙상 3종목을 제패한 것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은 이로써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만 금메달을 캐내던 '편식증'에서 벗어나 비로소 빙상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보너스'다.
한국은 그러나 얼음판을 벗어나 설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최약체국으로 내려앉는 아이러니에 놓인다. '눈과 얼음의 축제' 동계올림픽에서 '반쪽 승리'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지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알파인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프리스타일 스키, 스노보드, 바이애슬론 등 6개 설원 종목에 12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또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등 3개 썰매종목에 6명을 파견했다. 이중 4차 레이스까지 진출한 종목은 봅슬레이 남자 4인승이 유일했다. 이들은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국가론 처음으로 결선에 올랐지만 순위는 19위에 머물렀다.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프리스타일과 15㎞ 추발에 나선 이채원(29)도 역대 최고성적으로 골인했지만 50위권에 그쳤다.
문제는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후배들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채원은 10년간 국내무대를 주름잡은 백전노장이고, 스키점프 대표팀도 1세대들이 10여 년 이상 현역으로 뛰고 있다. 훈련할 장소가 없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나마 스키 등 눈밭을 가르는 설원종목은 일반 스키장에서도 훈련할 수 있지만 썰매 3종목은 일본에서 경기장을 빌려 대표팀을 꾸릴 정도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 첫 걸음을 내딛은 모굴 스키와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등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 출전한 김호준(26)과 모굴 스키의 서정화(20)가 그 주인공. 이 종목에서 우리와 신체조건이 비슷한 일본과 중국 등이 정상급 기량을 과시해 '우리도 충분히 해 볼만하다'는게 중평이다. 빙상에서 효과를 본 '밴쿠버 프로젝트'처럼 지속적인 투자가 뒤따른다면 새로운 메달 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국가적인 재정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최근 "만원 버스같은 스키장에서 무슨 훈련을 할 수 있겠느냐"며 "동계종목 훈련상황에 대해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빙상에 이어 설원에서도 메달 지평을 개척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꿈나무 발굴과 국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한 때다.
최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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