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통음악 가운데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사물놀이다. 사물놀이란 북 장구 꽹과리 징 이 4가지 민속타악기로 연주하는, 듣는 사람의 혼을 빼는 신명 나는 음악이다. 이 가운데 북은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최초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선사시대의 북도 나무에 홈을 파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동물의 가죽을 덮어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북은 선사시대부터 전쟁이나 마을의 축제, 공동행사 등에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며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 받고 있다.
그러나 북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으리라는 추정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우리의 경우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기록이 있어 이 때부터는 북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즉 고구려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의 자명고(自鳴鼓) 러브스토리도 있고 고구려의 벽화무덤인 안악3호분에도 보이고 있어 북은 삼국시대에는 보편적으로 제작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고학적인 실물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오랜 세월 삭아 없어진 것으로 이해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토제의 북이 삼국시대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최근 호로고루성터 발굴과정에서 발견되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로고루성터는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원당3리 임진강 북쪽의 현무암 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 평지에 마련되어 있는 고구려시대의 성곽유적으로 둘레 약 400m에 일종의 고구려 전초기지로서의 기능을 한 듯 보인다.
이 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현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에서 연천군의 의뢰로 발굴조사를 몇 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그 결과 고구려 기와와 군사용 식량저장시설 건물터는 물론 성벽의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성을 둘러싼 전공학자들간의 논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어느 나라 성이냐는 것이다. 즉 고구려 성이라는 주장과 백제의 성이라는 주장이 맞서왔다. 하지만 지난 해 발굴 조사시 고구려 성임을 뒷받침하는 유물이 다수 출토돼 그간의 시비를 말리게 되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유물이 바로 고구려 막새 기와다. 막새는 목조 기와건물의 지붕 끝을 장식하는 기와인데 고구려지역에서 발견되는 기와가 이곳에서 여러 점 출토되었다.
좁은 공간에 기와 건물을 세우고 일반 민가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막새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있었다는 것은 이 호로고루의 위상을 말해 준다. 한성백제를 멸망시킨 고구려 장수왕이 편 남진정책에 따라 이 지역을 시찰할 때 머물던 임시 거소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유물은 막새기와와 함께 출토된 토제의 북(土鼓)의 파편이다. 토기에 鼓(고) 즉 북이라는 한자를 새겨두었기 때문에 비록 파편이긴 하지만 토고의 실체가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 것이다.
발굴을 통해 의문시되던 역사적인 사실을 출토유물을 통해 밝히게 될 때의 고고학자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다. 호로고루 고구려성은 사적 제467호로 지정되어 연천군에서 정비 보존에 애쓰고 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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