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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아구와 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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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아구와 아귀

입력
2010.03.0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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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젊은 아버지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33세의 가난한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아구찜' 장사를 하셨다. 진해아구찜. 4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간판을 잊지 못한다. 해병대를 제대한 외삼촌과 나는 빈 철길에서 생아구를 말렸다. 해병대 군용텐트를 쳐놓고 그 속에서 먹고 자며 아구를 말렸다.

그땐 아구를 딱딱하게 말려서 찜을 만들었다. 나이 들어 아구는 사투리고 아귀가 표준어인 것을 알았다. 아귀란 이름은 불가의 아귀(餓鬼)에서 왔다. 살아서 식탐이 많았던 사람이 죽어서 굶주림의 귀신, 아귀가 된다. 입이 크다고 생선 이름에 귀신 이름이라니! 아귀는 넓은 바다에 서식하는데 영어로는 'blackmouth angler', 검은 입의 낚시꾼으로 불린다.

사투리, 방언 등을 '탯말'이라 한다. 고향과 어머니가 가르쳐준 말이란 뜻이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아구는 탯말이다. 아구란 이름엔 오랜 역사까지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아구어(餓口魚)'로 기록되어 있다. 전 국민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도, 아구라 부른다면 아구를 표준어로 대접해야 한다.

'탯말두레모임'이 헌법재판소에 표준어가 위헌인 것을 제기해 경종을 울렸지만 표준어는 여전히 서울 중심이다. 아귀는 귀신 이름으로, 아구는 생선 이름으로 정리되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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