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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군북初 정년 퇴임 앞둔 기능직공무원 김임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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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군북初 정년 퇴임 앞둔 기능직공무원 김임식씨

입력
2010.03.0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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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여름 어느 날. 아침부터 땡볕이 내리쬔다. 운동장에 요란한 예초기 소리가 퍼진다. '아저씨'가 학교 탱자나무 울타리에 올라가 웃자란 가지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중이다. 날카로운 가시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은 오토바이 헬멧으로, 육중한 장비를 든 두 팔과 다리는 각종 보호장구로 가렸다.

그 모습이 어린 초등학생에게는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전사 같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을지 짐작한 것은 그런 여름이 여러 번 지나고, 소년이 청년이 된 뒤였다.

김임식(58·충남 금산)씨는 충남 금산 군북초등학교의 '아저씨'다. 한국전쟁의 혼돈 속에 5남매 중 막내였던 김씨는 어려운 살림을 거드느라 학교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지게를 지기 시작해서 키가 이것밖에 못 자랐다"고 말한 그의 키는 청년의 어깨에도 못 미쳤다.

스무 살이던 1972년, 그는 자신의 모교이자 마지막 학교인 군북초등학교에 '소사(小使)'로 취직한다. "책걸상 고치는 것부터 청소, 조경, 수도, 배관, 전기, 도색, 목공, 용접…, 온갖 일을 다 했지. 학생 수는 많고 물자는 턱없이 귀하던 시절이잖아. 어찌나 일이 많던지!" 그는 만화영화 가제트형사 뺨치는 만능 기술자로 변신해나갔다.

김씨는 열쇠 부자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의 허리춤은 열쇠 뭉치로 묵직했다. 교문, 교실, 창고, 서랍…. 그와 함께라면 학교 안에서 못 가는 곳이 없었다. 그만큼 책임 또한 막중해서 그는 학교에 가장 먼저 출근해 문을 열었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문을 잠갔다.

그는 "이제는 열쇠들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만 듣고도 어디 열쇤지 안다"고 했고, 이웃들은 그의 허리춤에서 나는 경쾌한 열쇠소리만 듣고도 그의 존재를 알았다.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차례의 지각, 결근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셨어요. 궂은 일 도맡아 하시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으셨고요. 자그마한 체구에 언제나 밝게 웃으셔서 저희들끼리 버릇없이 '귀여우시다'고 할 정도였어요." 학교 관계자는 그렇게 전했다.

김씨의 둘째 아들 김주원(24·충남 금산)씨는 아버지와 함께 한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난방시설이 변변찮아 교실이 늘 추웠어요. 조개탄을 떼던 시절이었고, 교실 별로 수업 시작 전에 아버지께서 조개탄을 나눠줬는데 저와 형 반에는 두어 덩이씩 더 얹어주셨어요. 오후 수업을 마칠 때까지 온기가 남아있던 교실은 저희 교실 밖에 없었답니다." '아저씨'를 아버지로 둔 덕에 누린 그 따스한 특권을 두 아들은 잊지 않고 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학교에도 각종 편의 시설들이 보급되면서 체력적으로 고된 노동은 현저히 줄었지만 올 7월 그는 정년을 맞는다. 학교에서는 보은의 의미로 그의 마지막 학기의 노동을 면제해줬다고 한다.

이제 더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로선 쳐다보기도 힘든 교육계 '높은' 자리를 둘러싼 추문으로 세상은 시끄러운데, 사실상 은퇴한 그는 "개학 초기에 특히 할 일이 많은데…"라며 자신이 떠나온 빈자리를 걱정했다. "딱 3년만 더 일했으면 좋겠는데…."

15년 전 그 여름을 떠올리며 청년이 된 소년이 펼쳐본 김씨의 손에는 손금보다 더 깊은 노동의 흔적들이 잘게 패여 있었다. 가시에 찔려 생긴 흉터를 보여주며 김씨는 "긴 세월 동안 안 다쳐본 곳이 없지만 잘 자라준 너희들이 있고 항상 뒷바라지 해준 너희 엄마(조경애ㆍ56)가 있어서 지금껏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시ㆍ도교육청에 소속된 각급 학교 기능직 공무원은 약 3만3,000여 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약 3,000여 명이 올해 정년퇴임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주영 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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