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엔 전문가로" "기술 코리아 날개" 당찬 열정 스타트 라인에
한국일보는 지난해 시작한 연간 기획'기능이 미래다'의 제4부 '21세기 마이스터가 온다'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동안 제1부 '무늬만 기능강국 코리아를 고발한다', 제2부 ' 한국 제조업의 숨은 주역, 기능명장', 제3부 ' 기능선진국을 가다'를 통해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 한국일보는 제4부를 통해 21세기 신(新)명장을 꿈꾸는 신세대 기능인을 집중 소개한다.
또 맨손에서 시작, 스타가 된 기능인 출신의 최고경영자(CEO)의 성공 신화 등을 통해 산업계와 교육계의 인력 수급 불일치 문제와 청년 실업난, 망국병인 사교육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코자 한다. 편집자주
이지화 양 - 획일화된 입시 교육 싫어 외국행… 개교 소식에 7년만에 귀국
조수현 양 - 제철고 신입생 100명중 유일한 여학생… 기능사 자격증만 9개
올해 서울 관악구 미림여자정보과학고 뉴미디어 솔루션과에 입학한 이지화(16)양은 태국에서 날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때 우리나라를 떠나 유학을 시작했으니까 7년 만의 귀국인 셈이다. 이 양이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올해 처음 개교하는 마이스터고에 다니기 위해서다. 지난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얻고 직접 학교를 찾아가 설명을 들어보니 이 양이 꿈꾸던 기능인의 모습이 이 학교에 오롯이 녹아 있었다.
이 양은 원래 우리나라의 입시위주 교육과 특성 없는 학교가 싫어 한국을 떠났다. 부모님도 사교육에 노예가 되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덟 살 터울 오빠와 이 양의 유학을 결심했다. 엄마와 함께 시작한 태국 유학에서 이 양은 외국인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이 된 이 양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 양이 다니던 국제학교에서 고교에 진학해도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의 유명 대학이나 미국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그건 이 양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이 양의 눈에 한국의 마이스터고가 들어왔다.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 책 표지나 광고 등의 디자인 전문가로 일본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일하는 아버지는 앞으로 컴퓨터분야 기능인이 되면 한국에서 미래가 밝다고 조언했고, 어머니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입학전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도 이 양의 결정에 도움을 줬다. 이 학교는 모든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소와 공동개발한 미디어종합적성검사를 실시, 결과를 입학전형에 반영했다. 이 양이 입학한 뉴미디어 솔루션과도 적성검사 결과를 토대로 정해졌다. 뉴미디어 솔루션과는 웹사이트 제작 전문가, 웹 애플리케이션 전문가를 길러내는 과정이다.
이 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현장 취업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 양은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고 직장에 다니며 공부도 더 할 수 있는 등 기회가 많다"며 "20대 후반이 되면 벌써 이 분야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꿈도 컸다.
조수현(16)양은 또 다른 마이스터고인 충남 당진군 합덕제철고등학교 신입생 100명중 유일한 여학생이다. 제철분야 마이스터를 길러내겠다는 학교 설립 취지 때문에 여학생의 지원이 적은 탓도 있지만 그나마 지원했던 여학생들도 입학전형과정에서 모두 떨어지고 조 양만 유일하게 입학 허가를 얻었다.
조 양의 우수한 성적과 강한 의지는 학교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틈틈이 따둔 자격증은 기능사 자격증 2개를 포함해 9개나 됐고 학교 입학전형에서도 꼼꼼한 준비로 입학 심사관들의 눈길을 끌었다. 최성창 교장은 "조 양의 입학 성적이 신입생 중 가장 높다"고 귀띔했다.
조 양과 마이스터고의 만남은 우연처럼 이뤄졌다. 지난해 중3이 되면서 조 양은 학교 교지편집부에 들어갔고 편집회의를 하던 중 새로 생기는 마이스터고에 대해 알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때 조 양과 친구들이 합덕제철고를 찾은 것이 인연이 되면서 조 양은 이 학교를 수시로 찾아 정보를 수집했다. 담당 교사는 이미 입학전형 전부터 조 양을 눈여겨봤다. 반에서 10등 내외의 성적이었던 조양은 고교 입학 상담이 한창이던 지난해 친구들에게 마이스터고에 가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조 양은 "항상 도전해보는 것을 좋아한다"며 "기술 배우고 자격증 따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조 양은 "철강 자동화과가 제철소에서 사용되는 로보트나 자동화 설비 등 기계에 대해 배우는 과"라며 "앞으로 이 분야에서 최고의 마이스터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제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기술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반드시 글로벌한 인재가 되고 싶어요."
당진=강희경 기자 kstar@hk.co.kr
김주영 기자 will@hk.co.kr
■ '제빵의 김연아' '가구의 모태범' 기능신화 연다
2일 오전11시 서울 개포동 수도전기공고 체육관. 마이스터고 개교 및 1학년 입학식을 기다리며 웅성이던 학생들이 갑자기 '와'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문을 연 전국 21개 마이스터고의 입학식을 축하하기 위해 깜짝 등장한 것. 이 대통령은 건대부중 전교 1등 출신인 김예걸군을 비롯, 다른 마이스터고 대표 학생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원주정보공고는 2010년 입시 지원자 명단을 살피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별님, 이달님, 이햇님 세 쌍둥이가 한꺼번에 합격한 것. 이햇님양은 의료전기과의 수석까지 차지했다. "학교를 직접 방문, 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해 보니 딸들의 장래에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는 것이 부모들이 밝힌 이유다. 세 쌍둥이도 "대학까지 나와도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창의적인 명장(名匠), '마이스터'(Meister)의 꿈을 꾸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고학력 청년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겉치레 보다는 실속을 따지고, 젊은 세대들의 선택을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기능인에 대한 기업들의 재평가는 물론, 평균 수명이 늘면서 평생 직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새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먼저 마이스터고의 인기에서 확인된다. 마이스터고란 졸업 후 바로 취업이 가능한 기술명장을 양성하는데 목적을 둔 특성화 고교. 3,600명을 모집한 전국 21개 마이스터고의 평균 경쟁률은 3.55대1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지원자가 몰렸고, 충북반도체고의 경쟁률은 5.8대1이나 됐다.
기능인 출신 최고경영자(CEO) 배출이 잇따르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한 몫하고 있다. 6평 빵집을 매출 100억원에 도전하는 초대형 업체로 키운 김영모과자점의 김영모 회장을 비롯 장형태 대한종묘조경 대표, 소병진 홍익가구공예 대표 등은 이미 기능인 스타 CEO 반열에 올랐다.
물론 국가 지도자의 의지도 빼 놓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이날 "무분별한 대학 진학은 국민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키고 청년 실업을 더욱 악화시켜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또 "미래 세계를 내다보며 현장에서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전문 기술을 습득하고, 각자의 흥미와 필요에 따라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인재를 길러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수영의 박태환, 피겨의 김연아, 빙상의 이상화ㆍ이승훈의 성공 신화처럼 이제 기능 부문에서 21세기 젊은 마이스터들이 큰 일을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마이스터고는
마이스터고는 '젊은 기능명장(Young Meister)'을 키우고자 세운 새로운 형태의 학교다. 학생들은 학비를 낼 필요가 없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 졸업 후 학교와 손을 잡은 기업에 취업 해 경력을 쌓을 수 있고, 남학생은 취업하면 4년까지 군 입대를 미룰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동안 기술 관련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현장과 동떨어진 내용 중심의 교육을 받은 탓에 '취업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산업 현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재빨리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산업계와 적극 손을 잡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전마이스트고의 경우처럼 전자, 기계 산업계의 변화를 반영해 교육 과정을 짜는 등 에너지, 기계,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함께 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지역 산업계가 바라는 분야의 팀 프로젝트 학습과 자격증 취득을 적극 지원하는 군산기계공고의 예처럼 지역의 유망 분야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고치기도 했다.
현장의 경험과 기술을 교육 현장에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기능 명장들이 학생들을 직접 가르친다. 평택기계공고는 기아자동차, 만도기계 등 8개 협약 기업으로부터 현장 근무 경력 20년 이상의 전문가 8명을 산학겸임 교사로 뽑았다. 아울러 개방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자동차 회사 부사장, 한전 출신 에너지 전문가 등 기업 임원을 교장으로 선정, 산업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학교 운영에 녹아들 수 있도록 했다.
청소년들이 소신을 가지고 마이스터고를 선택할 수 있도록 취업 보장과 임금 보장 등 현실적인 부분도 뒷받침한다. 삼천포공고의 경우 선박조립, 항공기 부품 산업단지 안의 20여 개 업체와 손을 잡고 졸업생(100명) 수보다 더 많은 인원의 채용 보장을 얻어 놓은 상태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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