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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동계올림픽 패션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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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동계올림픽 패션 감상법

입력
2010.03.0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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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마를 연상케 했던 노르웨이 컬링 대표팀의 유니폼이 이번 동계 올림픽 최악의 유니폼에 선정됐다. 어릿광대가 입을 것 같은 체크무늬 바지로 스포츠의 존엄성을 희화시켰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내게는 체크무늬 바지가 북구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고 반가웠다. 마치 둥그런 로봇 청소기 주위를 밀걸레로 닦는 것 같은 경기 모습도 노르웨이 팀의 유니폼과 잘 어울렸다. 스포츠를 놀이로 보느냐, 격식에 맞추어 진행해야 하는 엄숙한 의식으로 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스포츠과학과 멋의 부조화

다 아는 것처럼 스피드스케이팅 1만m 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는 한때 쇼트트랙 선수였다. 그런데 쇼트트랙 복장을 입은 이승훈 선수와 스피드스케이팅 복장의 이승훈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유니폼은 공기 저항을 극소화하고 신체의 활동성을 최대한 높이려는 스포츠 과학의 결정체다. 특수 섬유로 만들어 피부처럼 몸에 붙어 있어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다. 특히 모자는 후드와 비니라는 요즘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후드처럼 상의와 붙어 있고, 비니처럼 머리에 밀착돼 있다. 키는 훨씬 더 커 보이고 머리는 훨씬 작아 보이는 선수들의 모습은 섬세하게 만들어진 질주 로봇처럼 멋지다.

그러나 쇼트트랙 복장은 선수들을 갑자기 어느 이름 모를 별에서 온 외계인이나 녹색 머리의 스머프로 만들어 놓는다. 이 종목에서는 스피드보다는 유연하고 기민한 신체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상하 일체형인 선수들의 복장도 최경량의 부드러운 소재에 덜 타이트하게 만들어져 선수들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안전을 위해 머리에 쓴 헬멧은 쇼트트랙 복장의 백미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앞뒤로 돌출된 헬멧은 선수들의 머리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는 데 기여한다. 선수들의 개성은 조직위가 일괄적으로 지급한 같은 색깔의 헬멧 덮개에 가려진다.

이번 올림픽의 경우 남자 선수들에게는 노란색, 여자 선수들에게 연두색의 덮개가 지급됐다. 고무 밴드로 마감된 이 덮개는 선수들의 헬멧을 언뜻 미장원의 머리 덮개를 연상케 한다. 그 덮개 위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일련번호도 이름보다는 번호로 불릴 어느 다른 행성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쇼트트랙 패션의 완성은 선수들의 장갑이다. 거기에는 얼음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손가락마다 둥그런 방울이 달려 있다. 이 방울을 보고 지구의 아이와 손가락을 맞대 소통하던 E.T.를 생각하지 않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계올림픽 유니폼을 얘기하면서 봅슬레이를 빼놓을 수는 없다. 봅슬레이 선수들은 관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거의 100kg이 넘는 거구들로 선발된다. 문제는 이 거구들이 비좁은 썰매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복장은 최대한 몸과 밀착돼야 하는데, 거구들의 몸에 입힌 타이트한 스판덱스는 아무래도 보기 민망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국가주의ㆍ 남성주의 작용도

스포츠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이데올로기와 스포츠 과학, 국가주의와 패션 감각들이 긴밀하게 반영돼 있다. 모든 나라는 선수들의 이미지에서 국가에 대한 시각적인 상징을 보여주려 애쓴다. 이번 동계올림픽 주최국 캐나다는 국기에 그려진 붉은 색 플라타너스 잎의 색깔과 문양으로 유니폼을 만들었다.

스키점프의 복장은 양력을 극대화하려는 스포츠 과학의 결정체이다.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선수들의 경기력뿐 아니라 그 나라의 패션 감각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에서 여자 선수들의 치마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것은 남성주의 이데올로기가 스포츠에도 관철되고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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