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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지리 프로파일링 개발한 권일용·강은경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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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지리 프로파일링 개발한 권일용·강은경 경위

입력
2010.03.0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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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키 170㎝정도의 전과가 없는 40대 중년 직장인이에요."(범죄행동분석요원) "그건 알겠고, 어디 가면 잡을 수 있겠어요?"(담당형사)

경찰 범죄행동분석요원(일명 프로파일러)은 난감하다. 수많은 단서와 수법을 분석해 개별사건들을 하나의 연쇄사건으로 연결(링크) 짓고, 범죄현장에 남은 공통된 동기와 심리를 탐구해 나이 전과경력 성격 등 범인상을 재구성(행동분석)하는 작업은 피를 말린다.

그런데 정작 범인을 현장에서 잡아야 하는 강력계 형사들은 시큰둥하다. 제 아무리 범인의 특징을 콕 집어줘도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라는 것이다. 연쇄사건은 반경 수십㎞ 안팎에서 벌어지는 탓에 설사 범인의 윤곽을 안다 한들 그 넓은 지역을 뒤져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연쇄범의 특징뿐 아니라 은신처도 예측할 필요성이 생긴 셈이다.

개발 과정

과학수사의 꽃이라 불리는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은 2000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에 범죄분석 팀이 생기면서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그간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과 마포 발바리 등 연쇄강도강간 사건이 늘면서 링크와 행동분석 분야는 발전을 거듭했고 범인 검거에도 공을 세웠다. 그러나 지리분야는 한국형 지형공식이 없어 손을 놓다시피 했다. 프로파일링 3대 조합 중 하나가 빠진 채 10년을 보낸 것이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강은경(29ㆍ경찰대 21기) 경위도 현장에서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애써 분석한 연쇄범인 관련 자료를 내밀면 형사들은 "도대체 어디서 찾으라는 거냐"고 불평했다. 강 경위는 2008년 우리 현실에 맞는 지리 프로파일링 공식을 만들겠노라고 작정했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통계학 지리학 수학 등을 따로 공부했다. 1년 뒤인 지난해 4월 미국의 지리 프로파일링 시스템(CrimeStat)에 국내의 지역적 특성과 사건 데이터를 얹어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GeoPros)을 구축했다.

작동 원리

프로그램 가동원리는 지리 프로파일링의 대가 킴 로스모 박사의 이론을 따랐다. ▦모든 범행장소 중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점을 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리면 그 안에 범인이 있다(범행원 이론) ▦범죄자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므로 거점에서 멀어질수록 범죄확률이 낮아진다(거리감퇴 함수) ▦신분노출 위험 때문에 거점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선 범행을 안 한다(완충지역 이론) 등이다.

미국 사법연구소가 개발한 CrimeStat은 이를 충실히 적용했지만 프로그램 알고리즘(함수식)이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졌다. 문화나 국민성, 범행수법이 다르고 무엇보다 고층건물에 인구가 밀집한 우리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인구밀도가 ㎢당 490명으로 선진국(23명)보다 확연히 높다. 같은 범위를 뒤져도 20배 이상 공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강 경위는 이를 감안해 우리 현실에 맞는 함수공식을 새로 만들었다. 쉽게 말해 외제 전자계산기를 쓰되 공식은 우리 걸 적용해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지리 프로파일링에 대한 한국적 개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전문교육을 받아야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강 경위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범죄 정보를 모니터상의 지도에 흩뿌려주기만 하면 자동으로 분석을 해줘 사용도 간편하다.

탁월한 위력과 다음 과제

강 경위와 국내 프로파일러의 원조 권일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위는 개발에 그치지 않았다. 범인이 검거된 연쇄사건 20건 정도를 가지고 지난해 내내 프로그램 검증작업에 몰두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놀라웠다.

범인의 위치가 반경 수백m 이내로 좁혀진 것이다. 미국 프로그램이 제시한 반경 수㎞보다 10배 가까이 예측력이 높았다는 얘기다. 심지어 경남 연쇄강도강간사건 등 몇몇 연쇄사건의 경우 다음 범죄지까지 정확히 집어냈다.

강 경위는 "연쇄강도강간은 범인의 위치를 거의 반경 300m 이내로 좁혔고, 연쇄살인인 유영철 사건도 탁월한 예측력을 과시했다"고 강조했다. 둘은 현재 연쇄살인범의 위치를 더욱 좁히는 함수식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외국 프로그램들의 오류도 발견했다. 모두 '범인은 하나의 거점(기항지)에서 출발해 범행장소로 이동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쇄범인들은 거주지 외에도 친척집, 직장 등 다수 거점을 지니고 있다.

권 경위는 "이사를 갈 때마다 범행지역이 달라진 강호순이 대표적"이라며 "다수의 거점을 설정하는 보다 복잡한 공식도 역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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