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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후 사형 폐지 운동에 헌신한 고중렬 前 교도관 "20년간 사형수 교화…지금도 악몽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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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후 사형 폐지 운동에 헌신한 고중렬 前 교도관 "20년간 사형수 교화…지금도 악몽 꿔"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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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종일 기도했는데, 몹쓸 사람들… 거창한 대의를 갖다 붙인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거 아닙니까, 살인공장이 그리 좋은지 원."

수화기너머 목소리는 심히 흔들렸다. 그 떨림이 아쉬움인지, 걱정인지, 분노인지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사형제가 살아남은(합헌 결정) 지난달 25일 오후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두서 없는 말들이 뒤엉키고 수많은 사형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정리가 필요했다. 어스름에 그를 찾았다. 그의 이력부터 살폈다.

고중렬(80)씨는 1952년 전쟁의 혼돈 속에서 500대 1의 경쟁을 뚫고 교도관이 됐다. '포인트(사형을 집행하는 손잡이)를 당기는' 집행자는 아니었지만 71년까지 사형수 교화담당으로 200여명의 사형집행을 지켜봤다.

그때마다 술에 절었고 틈틈이 책을 썼다. 사형을 당연히 여기던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저항이었다. 퇴직 후엔 일삼고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나섰다. 벌써 40년이 되어간다. 20년간의 업(교도관 생활)을 온몸으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냥 모른체하면 (사형을) 보고도 막지 못한 벌을 받을 것 같았어요. 지금도 악몽에 시달려서 벌떡벌떡 깨요. 집행교도관은 저보다 더한 후유증에 시달려요. 억울한 주검을 막아야죠." 그리곤 사형수 몇몇을 떠올렸다.

#55년 주인 내외가 연탄가스에 질식해 숨지자 머슴살이 하던 사내가 살인죄를 뒤집어썼다. 한사코 부인했지만 당시 국선변호사는 면회 한번 오지 않았고 결국 형이 집행됐다.

#66년 군산 전당포 살인강도사건의 공범은 밖에서 망을 보다가 주범과 함께 달아났다는 이유로 사형 당했다. 가난하고 못 배운 게 죄였다.

59년 7월31일 사형집행을 처음 목격한 날, 사형수 무리에 끼어있던 죽산 조봉암 선생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공산당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오'라고 하는데 어찌나 죄책감이 들던지. 이중간첩 누명을 쓴 이수근씨는 또 어떻고요."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이들이 많다는 게 고씨의 주장이다. 너무 먼 과거의 얘기처럼 들렸다.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쪽이 공격할 허점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극악무도한 범죄 등으로 축소한다는 단서를 단 거 아닐까요.

"집행은 단 5분이면 끝나요. 일단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해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 언제든 오판이 나올 수 있죠. 훗날 판결이 뒤바뀌면 되살릴 수 있나요? '정당한 응보'를 가장한 감정적인 보복이죠. 예전에 10명 집행하던 걸 기준을 엄격히 해 1명을 죽인다고 하면 그건 국가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요?"

-연쇄살인 같은 흉악범죄는 사회적 공분을 부르는 게 사실인데.

"아, 저도 속으로는 '죽일 놈'이라고 하죠. 죽어 마땅하다고. 그런데 그건 일시적인 감정입니다. 당장 죽이라고 오열하는 피해자 유족들도 막상 사형이 집행되면 그렇게 허무하다고 합디다. 흉악범을 용서하거나 형을 줄이자는 게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건 죄를 뉘우치게 하는 거죠. 사형은 그 기회를 앗아가요."

-아무리 해도 교화되지 않는 이들이 있을 텐데.

"늦어도 5년이면 다 참회하고 달라집니다. 사형수가 죽여달라고 하는 건 뉘우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에요. 오히려 사형집행이 사형수를 도와주는 꼴이죠. 행형법(行刑法) 1조는 '수형자 교정ㆍ교화, 사회복귀가 행형의 목적'이라고 규정합니다. 죽이라는 말은 없어요. 그런데 몇 년간 애써 교화해놓고 죽인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죠." 그리곤 사형수 한 명을 더 소개했다.

#김완선, 64년 도끼로 일가족을 몰살한 혐의로 69년 사형 집행. 그는 복역 초기 빨리 죽여달라고 난동을 부렸다. 종교에 귀의한 뒤엔 아픈 동료를 밤새 간호하고, 내의를 벗어주기도 했다. 죽기 직전 고씨에게 휴지뭉치를 남겼다. 깨알 같은 글씨엔 절절한 참회가 스며있었다.

-사형제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대안은 없나요.

"정부 수립 이후 920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범죄가 줄었나요? 더 흉악해지고 늘었어요. 빨리 죽자는 심정으로 살인을 하는 이도 있는 걸요. 용서하지 말고 종신징역을 도입해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아요. 평생 속죄할 수 있도록. 그런 건 법관 등 지식인들이 냉철하게 판단을 해줘야지요."

그는 사형은 세 명을 망친다고 했다. 사형수는 속죄할 기회와 목숨을 잃고, 교도관은 죄책감으로, 유족은 허무함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눈을 감기 전에 사형폐지를 봐야 할 텐데."

고씨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미사를 드리러 갔다. 수첩엔 그가 교화했으나 사형이 집행된 63명의 이름과 세례명, 죄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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