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알몸 졸업식 뒤풀이 사건이 일어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문화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청소년 문제, 학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가 고약하지만, 청소년의 폭력문제와 가치관 나아가 정신적 건강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될 것 같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교, 학부모, 학생 그리고 정부 모두가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잘못은 서로 지적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어정쩡하게 넘어가거나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문제, 학교 문제는 사실 학교와 학부모의 태도에 따라 상당수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특히 학교의 자세에 실망할 때가 많다. 학교의 근본 문제는 외면 혹은 회피에 있다. 모든 학생이 다 아는 교내 폭력이 있어도 학교는, 선생님들은 몰랐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문제를 학교는 모른다고 하니 그에 맞는 대책이 나올 리 없다. 하지만 그건 학교와 선생님의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학교는 학생과 관련한 일은 정확히 알고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을 했으면 따끔하게 혼 내고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러자면 학교와 선생님이 더 도덕적이고 더 노력해야 하며 믿음을 얻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조사 결과 학생들이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을 더 신뢰한다고 한 것을 단순히 지도 능력만 놓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부모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의 성적 올리기이다. 공부만 잘하면 잘못이 있어도 적당히 눈감아주는 경향이 있다. 공부 외에 다른 부담은 지우려 하지 않는다. 일부 아이는 공부를 조건으로 부모와 협상을 시도한다. 남과 다투지 말고 약한 아이 괴롭히지 말라는 가르침도 별로 없다. 제 아이의 잘못은 쉽게 인정하지 않고 감싸기에 급급하다. 학교가 교내 문제에 무성의한 자세를 보여도, 밉보일 것을 우려해 제 자식이 직접 관련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졸업식 사건의 당사자들도 “그게 우리의 전통”이라거나 “전에도 그랬는데 우리만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일 뿐 반성은 거의 없었다. 일부 청소년은 어른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자신의 행동에 학교와 학부모가 보일 반응을 예상할 수 있고, 언론이 “모두 어른의 잘못”이라는 상투적인 보도로 면죄부를 줄 것도 알고 있다. 잘못을 하고도 억울하다거나, 어른도 다 그런 것 아니냐고 도리어 큰 소리 치는 것을 보면 아이를 너무 두둔하고 어른의 잘못을 너무 부각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든, 아이든 잘못은 잘못이고 거기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교육 당국은 성적 경쟁을 유도할 뿐 학교 문화에는 소홀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과도한 학업 때문에 고통 받는 청소년들이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일탈을 감행한다. 유별난 학업지상주의를 나쁜 행동의 핑계로 삼기도 한다. 교육 당국은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더더욱 경쟁과 성적을 강조하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부추긴다. 진정 학교 문제를 걱정한다면 교육 목표를 성적 올리기, 공부 더 시키기에 둘 게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어울러 지낼 수 있는 방안의 제도화를 고민해야 한다.
박광희 생활과학부 전문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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