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지키지 못한 약속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지키지 못한 약속

입력
2010.03.02 08:37
0 0

평양의 그 친구는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작가대회에서 영화배우 박신양을 빼닮은 멋진 그 친구를 만났다. 평양을 떠나기 전날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송별 만찬장에서였다. 5박6일 간 북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나는 구석진 끝자리에 배정을 받았다.

평양에서 실망만 하고 떠나는 기분이 별로여서 혼자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가 인사를 건네왔다. 평양에서 발행되는 '통일문학'에서 일한다고 했다. 언젠가 연변을 다녀온 분이 내 시가 실린 '통일문학'을 가져다 준 적이 있어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반가워했다. 그것도 인연이라고 술잔이 오가며 형님 아우님 하며 취해갔다. 김일성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홀어머니와 산다는 그 친구는 남쪽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 친구를 통해 평양에서 읽히는 우리 작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술이 거나해지며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김원중의 '직녀에게'를 불렀고 그 친구는 김일성 주석이 지었다는 노래를 답가로 불러주었다. '국경의 북쪽'에서 잊지 못할 밤이었다. 그 친구에게 결혼을 하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다. 참석하지 못하면 축의금이라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그 친구는 순안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뜨거운 작별의 악수를 나눌 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남북 문학의 문이 닫힌 지 오래다. 그 친구가 결혼을 했다면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다.

정일근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