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그 친구는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작가대회에서 영화배우 박신양을 빼닮은 멋진 그 친구를 만났다. 평양을 떠나기 전날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송별 만찬장에서였다. 5박6일 간 북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나는 구석진 끝자리에 배정을 받았다.
평양에서 실망만 하고 떠나는 기분이 별로여서 혼자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가 인사를 건네왔다. 평양에서 발행되는 '통일문학'에서 일한다고 했다. 언젠가 연변을 다녀온 분이 내 시가 실린 '통일문학'을 가져다 준 적이 있어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반가워했다. 그것도 인연이라고 술잔이 오가며 형님 아우님 하며 취해갔다. 김일성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홀어머니와 산다는 그 친구는 남쪽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 친구를 통해 평양에서 읽히는 우리 작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술이 거나해지며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김원중의 '직녀에게'를 불렀고 그 친구는 김일성 주석이 지었다는 노래를 답가로 불러주었다. '국경의 북쪽'에서 잊지 못할 밤이었다. 그 친구에게 결혼을 하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다. 참석하지 못하면 축의금이라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그 친구는 순안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뜨거운 작별의 악수를 나눌 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남북 문학의 문이 닫힌 지 오래다. 그 친구가 결혼을 했다면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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