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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관 기름 도둑 꼼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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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관 기름 도둑 꼼짝마!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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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일 경기 성남의 대한송유관공사 본사 중앙통제실. 거대한 모니터에 초록, 주황, 빨간색을 입은 수 백 개 선들이 빽빽하다.

통제실 관계자는"휘발유, 등유, 경유, 항공유 중 어떤 기름이 얼만큼 흘러가는 지를 보여준다"며"우리 손으로 만든 누유감지시스템(LDSㆍLeak Detection System)을 통해 송유관에 작은 이상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 본사 바로 옆 판교 저유소 주변. 남성 2명이 긴 모양의 측정기를 들고 땅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걷고 있다.'순라(巡邏)꾼'이라 불리는 송유관 공사의 관로 순찰팀원들이다.

공사 관계자는 "2m 땅 속에 묻힌 송유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팀원 40명이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의 취약 구간 200곳을 샅샅이 훑는다"고 말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기름 한 방울도 도둑들에게 쉬 허락할 수 없다"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기름 도둑들과 피 말리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송유관은'석유 배달을 위한 땅 밑 고속도로'라 불린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원유 수송을 위해 쓰이기 시작했고 날씨, 시간, 교통 상황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장 현대화한 수단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전국의 땅 속에는 송유관 1,311㎞(군용송유관 포함)가 묻혀 있다. 1997년 완공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입한 원유와 울산, 전남 여수 등 5개 정유사 공장의 석유 제품을 전국 주요 도시의 저유소와 공항까지 '배달'하고 있다. 특히 휘발유, 등유, 경유, 항공유 등 경질유의 연간 총 사용량 2억5,000만 배럴(Bbl)중 53%인 1억3,300만 배럴이 송유관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1일 평균 유조차 7,113대의 운행을 줄여줘 교통 정체, 도로 파손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유조차의 배기가스 배출량과 유조선 사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양 오염을 줄이는 효과도 크다는 게 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 송유관에게 '도유꾼'은 가장 큰 골칫거리이다. 도유 사건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건 2005년부터. 유가 급등으로 경제 사정이 나빠지고 실업률이 증가하던 때다. 역설적으로 비싼 기름을 훔쳐 '한 탕'을 올리려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게 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름도 기름이지만 공사 측은 화재 위험과 환경 오염을 특히 걱정하고 있다. 최태영 서울지사장은 "송유관을 뚫을 때 생기는 정전기나 작은 불꽃으로도 불이 나고, 강한 압력 때문에 순식간에 대형 참사로 번진다"고 말했다.

실제 2008년 1월 울산에서 송유관을 뚫으려다 불이 나는 바람에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토양과 수질 오염 등 2차 피해도 심각하다. 공사 관계자는 "오염 지역 환경을 되살리는데 2,3년이 넘게 걸린다"며 "2차 피해 복구에만 100억원 가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2008년 최첨단 LDS 시스템을 개발했다. 공사 관계자는 "미국 SSI의 시스템을 썼지만 많은 양(시간당 100리터)이 새야 체크가 되고, 누유현상을 파악하는데 10분 이상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며 "1년 넘게 자체 연구 끝에 한국형 LDS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름 양, 압력의 변화, 파형의 전달 시간 차, 변화 폭 등을 통해 기름이 새는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시스템이 잡아낼 수 없는 부분은 사람의 손과 발로 채운다. 공사는 2007년 관로 순찰을 전담하는 '파이프라인 패트롤(PLP)'팀을 만들고 관로 순찰 전담 자회사 두 곳을 세웠다. 공사 관계자는 "송유관이 주로 인적 드문 고속도로나 국도 주변이라 감시가 쉽지 않다"며 "도굴꾼들은 수천만원짜리 기계를 쓰거나 변두리 모텔을 통째로 빌려 땅굴을 파서 도유를 시도할 만큼 조직화, 지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들로 도유시설 설치 후 이틀 안에 발견하는 비율이 47%에서 77%로 증가했고 도유 사건은 2008년 31건에서 지난해 22건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공사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올해만 관로 순찰 자회사 세 곳을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최광식 대한송유관공사 사장은 "도유는 경제 손실은 물론 환경 오염까지 일으키는 범죄지만 공사측에 사법권이 없는 상황이라 한계가 있다"며 "도유사범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에 가중 처벌 조항을 만들고, 경찰내 도유 전담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남=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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