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97년 IMF위기 이후 이 질문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세계 공통의 요인이다. '김연아 신드롬' 같은 데서 보는 연예계나 체육계의 전세계적 '승자 독식' 현상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회 전반에 퍼지는 '승자 독식'
그렇게 된 데는 급속한 정보화가 한 몫 하였다. 그리고 정보화는 그 자체가 기술진보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술진보에 따라가는 층과 못 따라가는 층 간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등장도 변수다. 중국의 등장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고, 그것은 자본에 비해 노동에 불리한 분배로 귀착되어 양극화를 가져온다. 한국의 고유한 요인도 있다. 위기 이후 '거버넌스' 개혁으로 '주주 가치'를 올린 것은 노동보다는 자본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물론 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양산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 위기 전 한국은 고도성장으로 계속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 양극화를 막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것은 실업이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 비추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교육 받은 고급인력의 탄력적 공급이라는 조건도 있었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같이 느는데 공급은 고급인력 쪽이 더 빨리 늘어나 임금 격차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위기 후 한국에서 양극화가 일어나는 데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이 붕괴한 것이 큰 요인이 되었다. 성장동력이 약화되니 일자리도 줄었다. 노동의 수요 증가가 부진하니 고급 인력의 공급 탄력성이 높은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늘어난 것은 음식점 숙박업소 같은 영세 자영업자로서 이들은 사실상 '잠재실업자'다.
결국 위기 후 성장동력 약화와 양극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성장 동력을 되찾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양극화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물론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의 양극화'로 성장동력 자체가 양극화하고 있다. 위기 후 일부 대재벌 기업은 세계적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여전히 부실을 벗어나지 못한 기업도 많다. 대기업이 많은 상장기업 중에서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평균으로 보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29%나 된다. 중소기업은 그 비중이 40%를 훨씬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우량 대기업은 수가 많지않고 자본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므로 성장해도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 반면 수도 많고 노동 집약적인 여타 기업은 재무상태가 부실할 경우에 위기 전과 달리 성장이 훨씬 어렵게 됐다. 위기 전에는 재무상태가 부실해도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곤 했지만 이제는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과 고용을 늘리기 어렵게 됐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가 늘지 않으니 양극화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양극화 요인 중에서 세계 공통의 요인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 고유한 요인이라도 거버넌스 개혁은 되돌려서는 안 되고, 비정규직도 무조건 되돌릴 수는 없다. 이런 문제는 '친 서민' 정책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동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다.
중소ㆍ보통기업에 관심 가져야
현 정부도 그런 목적으로 많은 방안을 마련하였다. 말 많은 4대강 사업을 제외한다면 선진서비스산업, 녹색기술, 융합산업 육성 등이 틀린 방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산업'의 영역보다 '기업'의 영역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는 없는가. 돈을 들고도 투자를 않는 재벌기업에 세금 깎아주고 규제를 풀어준다거나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기에 앞서 '보통 기업'들 간에 나타나는 양극화 문제를 먼저 다루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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