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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9번째 시집 '도둑 산길' 낸 이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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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9번째 시집 '도둑 산길' 낸 이성부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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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소회는 없어요.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나 하는 느낌 정도죠.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열심히 시 쓰고, 열심히 산에 다니려고 합니다."

올해 등단 50년을 맞아 아홉 번째 시집 <도둑 산길> (책만드는집 발행)을 낸 이성부(68) 시인이 심상하게 밝힌 소회다. 1960년에 등단, 시집 <우리들의 양식> (1974) <백제행> (1976) 등을 내며 격조있는 언어와 감성의 민중시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80년대 중반 암벽등반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여섯 번째 시집 <야간산행> (1996)부터 산과 산행을 소재로 한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덕유산, 속리산, 태백산을 거쳐 설악산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뒤 출간한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이후 5년 만에 낸 이씨의 이번 시집의 수록작 대부분도 산에 관한 것으로, 그가 2005년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며 회복되는 과정에서 쓰여졌다. 1980년 고향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한 절망과 울분으로 3년 간 절필했던 그에게 다시금 시심을 찾게 해준 산은 이번엔 그에게 건강을 되돌려줬다.

시인에게 산은 모든 세상사의 은유다. 산길은 '내 몸의 무거움을 비로소 알게 하는 길'이며, 사는 일이란 '그저 이렇게 돌거나 휘거나 되풀이하며/ 위로 흐르는 것'임을 가르친다('깔딱고개' '산길'에서). 바위가 깨져 형성된 돌무더기 비탈인 너덜겅에서 시인은 '완강한 것들은 언젠가는 제풀에 무너지기 마련'임을 새삼 깨달으며, '쓸모없이 널브러진 욕망들의 단단한 부스러기'를 응시한다('너덜겅 내려가며'에서). 바위를 타고 백두대간을 누비던 시절에 비해 시인의 산시는 한결 순하게 자연과 몸을 섞는다. '수북이 잠자는 낙엽들 뒤흔들어/ 깨워놓고 가는 내 발걸음 송구스럽다/ 놀라지들 말거라/ 나도 이파리 하나/ 슬픔을 아는 미물일 따름이니'('길 아닌 곳에 들다'에서).

시인은 "처음 산에 다닐 땐 높은 데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성취감에 끌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연 앞에 겸허해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하늘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들 말합니다만/ 나에게는 오히려 속진 속에서/ 낮게 사는 길을 가르쳐줍니다'('오르막길'에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시인의 동지애 어린 관심은 핍진한 민중시를 쓰던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주변에서 '산시에 물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산은 다닐수록 새롭고 내 시는 언제나 그 새로움을 기록하려 한다"는 이씨. 일주일에 서너 번 산에 오르면서 얻은 시상이 몸 속에서 절로 익도록 기다리다가, 어느 아침나절 시로 풀어내는 그의 일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모양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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