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도 살려고 태어났는데 우리 새끼 살려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주시고 고통스럽지 않게 해 주세요."
심한 피부병을 안고 태어난 갓난아기의 아버지가 의사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길어야 두 달을 넘기기 힘든 새 생명을 앞에 두고 "아빠 간다"고 인사를 건네며 돌아서는 그의 핏발 선 눈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다.
SBS 수목드라마 '산부인과'의 지난달 4일 방송을 본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갓난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정을 절절하게 연기한 배우에 대한 호평이 시청자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이날 오열하는 아버지를 연기한 박재훈(39)의 배역은 주연도 조연도 아닌 단역 출연자, 카메오였다.
최근 드라마에서 카메오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특히 잠깐 얼굴만 스쳐 지나가거나, 짧은 대사를 소화하며 흥미를 유발하는 데 그쳤던 기존 카메오 개념에서 탈피해 명품 연기를 선보이거나, 에피소드의 중심인물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카메오가 늘고 있다.
'산부인과'는 카메오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드라마다. '쌍둥이 아빠' 박재훈 외에도 성지루, 현영, 이의정 등이 카메오로 출연해 주연 못지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이 드라마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다른 의학 드라마와 달리 1회성 출연자인 환자의 연기 비중이 높아 카메오 섭외에 심혈을 기울였다. 제작진은 "이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줄 몰랐다"며 그들의 열연에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은 김태원, 타이거JK 등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비연기자들을 에피소드의 핵심 카메오로 출연시키며 시청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순태 PD는 "김태원이 맡은 배역은 김태원밖에 소화할 수 없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섭외를 결정하게 됐고, 타이거JK는 예전에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것을 보고 '지붕킥'에 출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섭외했다"고 말했다. 카메오가 시트콤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중심 요소로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 제작자는 "카메오들이 극의 흐름 전체를 꿰고 있지 않은 경우가 있어 고정 출연자와 호흡을 맞추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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