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인 이완용이 한일 강제 병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일본 고위 관료의 죽음을 애도해 일본 현지에서 비명(碑銘)을 써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완용은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對馬島)시 이즈하라(嚴原)의 코쿠분지(國分寺) 뒤 공동묘지 최정상에 있는 고쿠분쇼타로(國分象太郞)의 묘비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고 황백현 발해투어 대표가 25일 밝혔다.
이완용이 고쿠분쇼타로의 죽음을 애도하며 비명을 써 준 사실은 1984년 쓰시마향토연구회가 펴낸 <대마풍토기(對馬風土記)> 에 기록돼 있으며, 대마도 박사로 통하는 황 대표가 지난해 말 이를 확인했다. 묘비 전면 중앙에는 큰 글씨체로 '종삼위훈일등국분상태랑지묘(從三位勳一等國分象太郞之墓)', 왼쪽 아래에는 후작 이완용이 썼다는 의미의 '후작(侯爵) 이완용(李完用) 서(書)'라고 각각 적혀 있다. 대마풍토기(對馬風土記)>
이는 이완용이 한일 강제 병합에 깊숙이 관여해 한민족의 원흉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고쿠분쇼타로의 죽음을 애도해 일본 현지에 있는 비명을 직접 써 줬다는 의미여서 이완용의 친일 매국 행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지역 출신인 고쿠분쇼타로는 조선어 실력이 탁월해 을사늑약과 한일 강제 병합 조약문 초안을 작성했고, 병합 때는 조선 왕족과 관리들을 협박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으며, 이완용과는 한일 관계 역사책인 <해행총재(海行摠載)> 를 간행하면서 긴밀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행총재(海行摠載)>
황 대표는 "비명은 이완용이 오직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한일 강제 병합 원흉인 일제 관료의 비명까지 써 줘 가며 조국을 팔아 먹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며 "쓰시마 역사탐방투어에 포함시켜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박상준 기자 s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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