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밴쿠버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올림픽 계주 5연패를 노리는 박승희(18ㆍ광문고)-조해리(24ㆍ고양시청)-이은별(19ㆍ연수여고)-김민정(25ㆍ용인시청ㆍ이상 출발 순)은 최강 중국, 캐나다, 미국과 나란히 결승 무대에 나섰다. 출발 총성 후 꼬리에서 빈틈을 노리던 한국은 이내 앞으로 치고 나가 중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레이스를 펼쳤다.
양보 없는 싸움이 한국 쪽으로 기운 건 전체 27바퀴 중 5바퀴를 남겨둔 시점. 뒤 주자의 '푸시'를 받은 김민정과 중국 주자 선린린간 접촉이 있었고, 선린린이 옆으로 넘어질 뻔하다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이 사이 김민정이 쏜살같은 질주로 중국과의 격차를 벌렸고, 레이스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중국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레이스 주자 1명 외에 트랙 안쪽에서 천천히 얼음을 지치며 지켜보던 한국선수들은 피니시 라인이 다가오자 금메달을 확신한 듯 만세를 불렀다. 경기 직후 퍼시픽 콜리시엄은 교민들과 선수단 관계자들이 이룬 태극기 물결로 축제 분위기. 한국선수들은 관중에게 건네 받은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5연패를 자축했고, 중국선수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분위기가 급변한 건 불과 몇 분 뒤. 경기 후 비디오를 돌려 보며 의견을 주고 받던 심판 2명 중 1명이 반대쪽의 최광복 한국대표팀 코치 쪽으로 다가갔다. 주심 제임스 휴이시(호주)는 김민정과 선린린간 접촉 때 김민정의 임피딩(impedingㆍ밀기)이 있었다고 최 코치에게 알렸다. 이는 곧 실격 통보. 곁에 있던 중국 코치는 뜻하지 않은 행운에 연방 펄쩍펄쩍 뛰었고, 최 코치는 몇 차례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한 듯 주먹으로 펜스를 내리쳤다.
관중석은 중국팬은 물론 동메달이었다가 은메달로 올라가 들뜬 캐나다 홈팬, 4위였다가 동메달을 건진 미국팬들의 환호로 뒤덮였다. 중국선수들이 서로 껴안고 행운을 만끽하는 사이 한국선수들은 망연자실한 듯 태극기를 내려 들고 얼음 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임피딩은 손이나 몸으로 추월을 가로막는 반칙. 고의성 여부에 따라 반칙으로 인정되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보기도 한다. 이날 심판은 김민정이 안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선린린의 얼굴을 고의로 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민정 직전 주자 때부터 한국이 앞서 있어 무리한 동작이 필요 없었던 상황인 데다 접촉 또한 앞으로 갈 때 팔을 흔들면서 생긴 터라 실격 처리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이번 대회 심판들의 성향은 3,000m 계주 결승 전까지만 해도 임피딩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