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 허리 휘는데… 정부, 사교육비와 전쟁 '엉터리 승전보'
정부가 사교육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갖가지 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됐지만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증가율이 다소 둔화했지만 주로 경기 침체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반가운 소식도 아니다. 사교육비 대책의 효과를 의심하게 하는 이유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월 23일 "지난해 전체 사교육비 지출은 3.9% 늘어나는 데 그쳐 증가율이 전년 대비 1% 포인트 줄었고, 특히 하반기에는 지출이 0.25% 감소했다"며 "사교육비가 감소한 것은 공교육 경쟁력을 강화, 학원 심야 교습 제한, 사교육 없는 학교 운영 등 지난해 하반기 집중 시행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기 침체로 가계 소득은 늘지 않았지만 교육비(공교육비 포함) 부담은 지난해 하반기에도 여전히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가구당 월평균 수입은 전년 대비 1% 늘어난 344만2,771원이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 2.8%를 감안하면 실질 가계수입은 줄어들었다. 반면 가구당 월 교육비 지출은 29만1,078원으로 전년 대비 7.2%나 상승했다. 공교육비 증가 요인이 거의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주로 사교육비 증가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가계수입 중 교육비 지출의 비율을 계산한 가계수입 대비 교육비 부담률도 2008년에 비해 5% 증가했다. 특히 교과부 자료에서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밝힌 지난해 하반기에도 이 비율은 3분기 6.9%, 4분기 1% 올라 교육비로 인한 가계 부담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또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내놓은 입학사정관제로 컨설팅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 통계에서는 빠져 있어 이 부분까지 합치면 사교육비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입학사정관제 컨설팅 분야는 현재 사교육비를 계산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아 파악이 안 돼 있다"며 "앞으로 교육정보공개특례법과 학원법 등을 고쳐 통계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지난해 서울에 입학사정관제 대비 컨설팅 업체가 14곳 정도 있다고 했지만 일선 학원에서도 관련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어 업체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업체들은 1회 컨설팅 비용으로 20만~50만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200만~400만원을 받고 자기소개서를 대필해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B학원 관계자는 "자기소개서를 100% 대필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첨삭이나 상담 등 형식으로 상당 부분을 써 주는 논술 학원 등이 있다"며 "입학사정관제 시행 전에도 정시나 수시 때 회당 100만원을 받는 컨설팅 업체가 성행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학원에서 입학사정관제 컨설팅 서비스를 패키지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이 분야에 새롭게 뛰어드는 학원이나 교육 관련 기업들도 많다. 유명 학습지를 발간하는 A업체 관계자는 "최근 초ㆍ중등 학생을 상대로 입학사정관제 대비 등을 위한 교육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고 지난해만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관련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 "학원 다녀요"서 "과외 받아요"로… 심야교습 제한 '비웃음'
작년 4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추진한 학원의 밤 10시 이후 심야 교습 제한 법제화.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결국 법령 대신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해 심야 교습을 제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폐해는 엄청났다. 이 조치가 실행된 후에도 대형 학원들은 학생들을 잃지 않기 위해 교습 시간 제한을 무시했다.
영세 학원들은 단속을 피하기 쉬운 과외방으로 뛰어들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계속 심야 수업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 과외방들이 위험수당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서민 학부모들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 매야 했다. 공교육 정상화와 학생의 건강권 보호 등 당초 취지는 완전히 무색해졌다.
학원의 양극화-영세학원만 망한다
"강의실 7개 중 3개만 쓰고 나머지 4개는 놀리고 있다. 학생이 60명 선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16명으로 줄었다. 80평 학원을 문 닫으려고 내놨지만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2) 원장의 하소연이다. 정부가 내놓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교육 현장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영세 학원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김 원장은 "우리는 10시까지 교습 시간을 지키고 있지만 대형 학원들은 여전히 밤 12시를 넘겨 새벽 1시까지도 영업하고 있다. 대형 학원은 단속받더라도 벌점 맞고 벌금 내면서 계속 영업한다. 소규모 학원들만 망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조치가 학원의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지방 학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원 춘천시의 E학원 박모(46) 원장은 "큰 학원들은 강의실이 많으니 동시 수강이 가능하지만 영세 학원은 수업 가능한 시간이 줄어들어 2, 3부제로 운영해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춘천시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대입뿐 아니라 고입 학원 시장도 큰 편이지만 학원의 양극화 때문에 문 닫는 영세 학원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풍선효과-기업화하는 과외방
영세 학원들이 망하면서 커지는 곳은 과외 시장이다. 압구정동 보습학원의 김 원장은 "강남 지역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과외교습소가 성행했는데 요즘은 더 많아지고 있다. 교습소 2개 중 하나는 무허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과외방은 학원강사 출신들이 인맥 중심으로 움직이며 운영한다. 과외방 하나에 보통 10명의 강사가 모이며 점조직 영업으로 학생들을 모집해 오피스텔과 상가에서 수업을 한다. 김 원장은 "길가에서는 안 보이지만 옆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어디에 과외방이 운영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문제는 이들이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춘천시의 박 원장도 "춘천 시내에도 고층 아파트 1개 라인마다 과외방이 5, 6개 운영될 정도다. 주변의 학원 원장 가운데 과외방으로 전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도 많다. 최근 들어 과외방이 급격히 기업화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는 과외방 전담실장과 별도의 차량까지 배치해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과외방의 형태는 5, 6명이 1명의 강사에게 수업받는 형태가 일반적이며 1 대 1 개인과외도 적지 않다.
박 원장은 "강사 1명이 120명 이상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1명에 20만원씩 받는다고 치면 월 수입이 2,400만원 가량 된다. 이렇게 많이 받지만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학부모에게 현금영수증과 세금계산서를 끊어 주는 곳도 없다. 강사 역시 지역교육청에 신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화하는 교육 불평등
과외방의 성행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저소득층 학생이다. 김진우 좋은교사모임의 정책위원장은 "영세 학원은 저소득층이 활용하는 사교육이었다. 그런데 소규모 학원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저소득층 학생들은 이마저 줄일 수밖에 없다. 학원 단속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은 잡아야겠지만 또 다른 방식도 고민해 봐야 한다. 결국 사교육도 양극화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육 전문가도 사교육비의 고액화 부작용을 지적했다. 학원의 교습 시간이 줄어들면 강사 입장에선 수입을 맞추기 위해 음성적 과외 시장으로 이동하게 되고, 결국 학생 개인당 사교육비 단가가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수면권을 보장하려는 원래 의도도 교육 현장에서는 변질되고 말았다. 한 학원 관계자는 "과외방에서 몰래 배우거나 대형 학원에서 10시 넘게까지 수업하고 난 뒤에도 학생들은 또 인터넷으로 공부하는데 학원 교습 시간을 줄인다고 건강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말에 학원들이 수업을 빼곡히 편성하는 것도 학생들에겐 큰 부담이다. 경기 광명시의 모 학원장은 "토요일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수업하고, 일요일에도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수업한다. 학생들의 수면권과 건강권 보장은 웃기는 얘기"고 말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정부가 규제 정책을 쓰더라도 근본적인 교육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생기면 입학사정관제 대비 학원이 생기고, 자기주도형 학습이 거론되면 그에 따른 수많은 변종 학원이 생긴다. 교습 시간 제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오히려 교육 불평등만 심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김청환 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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