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아이티를 휩쓴 지진보다 최소 500배 이상 강력한 것으로 추정되는 칠레 강진의 피해로 지난달 28일(현지시간)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700명을 넘는다. 하지만 칠레 현지 언론들은 "최대 1,500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으로 예상한다. 언론들이 희생자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보는 이유는 50만 동에 달하는 주거 건물들이 파괴됐고, 이 건물더미에 깔린 수많은 부상자들의 구조가 늦어질 경우 사망자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과 강도가 뒤섞인 참사현장
지진발생 이틀째인 28일 외신들이 전하는 칠레 콘셉시온 시내 풍경은 무너진 건물아래에서 한 명이라도 더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조대와, 경찰 최루탄을 피해 상점을 약탈하는 시민들로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AP통신은 "영웅적인 행동과 강도 행위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콘셉시온 시내에 위치한 15층짜리 신축 건물 '리오 알타'가 무너진 현장에선 28일 하루 동안 23명이 구조됐고 시신 7구가 발견됐다. AP통신은 약 60명의 생존자가 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으며 칠레 구조대원들이 열탐지기와 탐지견을 동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조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건물 13층에서 떨어졌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알베르토 로자스씨는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해 7살 딸을 데리고 화장실에서 지진이 멈추기를 기다렸다"며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듯 건물이 무너져 내렸으나 딸을 껴안은 채 눈을 떠보니 둘 다 타박상 외엔 큰 상처가 없었다"고 언론에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구조대원들이 여전히 흔들리는 불안전한 건물더미에 올라선 채 위험한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칠레 구조당국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전기 등 복구 늦으면 약탈 계속될 듯
a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150만명에 달하는 이재민들은 지진 발생 첫날밤(27일)을 대체로 거리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숙을 하며 지냈다. 이들은 "건물이 안전해 보인다면 실내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정부의 권고조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여진 등을 걱정해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한 일부는 주변 상점을 약탈했다. abc는 "피해지역의 전기와 상수도 시설이 빨리 복구되지 않으면 대규모 약탈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P는 산 페드로 시내의 한 대형 쇼핑몰 점포들이 약탈자들의 방화로 일부 불길에 휩싸였으며 "그야말로 가게를 싹쓸이 해갔다"고 전했다. 한 경찰은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물건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건물을 지켜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클린 반 리셀베르게 콘셉시온 시장은 "생필품 부족으로 인해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단순한 생필품 약탈자 보다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자신의 부를 챙기려는 이들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도 수도 산티아고 국제공항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28일부터 일부 항공기의 이착륙이 허용되는 등 칠레 곳곳이 지진 쇼크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산티아고_콘셉시온 고속도로 차량운행이 1일 중 부분적으로 재개될 예정이며 산티아고에선 약탈행위가 거의 진정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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