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건 1985년.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와 대그룹 기획실 광고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에게 광고는 너무나 재미난 대상이었다. 밤샘작업에 몸은 힘들어도 흥이 났고 날마다 기대로 부풀었다.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난 것처럼 광고가 그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지금 그는 서울의 한 이탈리안 음식점 주방에서 열심히 토마토를 썰고 있다. 도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칼끝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몸에 걸친 하얀 요리사복이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다.
신입사원 때 같은 긴장감으로 날마다 새롭다. 자신이 내놓은 음식을 먹고 손님이 맛있다고 던진 한마디가 예전 광고주가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던 것만큼이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홍익대 앞 주택가에 있는 이탈리안 음식점 '파우자(Pausa)'를 운영하고 있는 강성영(51)씨 이야기다. 잘나가는 광고기획자에서 이탈리안 요리사로의 과감한 변신을 선택한 그를 만났다.
가게는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으니 이제 3개월 조금 넘었다. 아직은 그의 도전이 성공한 건지 실패한 건지 판단하기 이르다. 큰 대로변도 아니고 주택가 구석에 자리를 차렸으니 입소문이 날 때까지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는 85년 대우에 입사했다. 기획실 안의 광고팀에서 3년을 일하다 오리콤으로 옮겼고 또 3년 후 친구와 광고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마티즈 레간자 등 굵직한 광고를 진두지휘 했다.
"그때가 좋았어요. 다시는 안 올 최고의 거품시대였습니다. 광고비와 판촉비를 펑펑 쓸 때였지요. 국내서 찍어도 될 걸 굳이 해외에 나가 촬영을 하던 시절입니다."
그는 그때 많은 일을 했다. 자신이 돌아봐도 일을 참 잘했던 시절이다. 아이디어도 넘쳤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 40대 초반 때 일이다.
지금 음식점을 선택했지만 음식에 일찍부터 눈을 뜬 것은 아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도 또래와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을 보냈다. 피자도 군 제대 후 처음 맛을 봤다. 사회에 진출하니 주변에 진수성찬이 즐비했다. 남들 피하는 회식이 그는 좋기만 했다. 회사 뒤 고깃집의 주물럭등심을 먹고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고 부드러운 고기가 있다니 놀랍기만 했다.
횟집도 그제야 처음 가봤다. 광고 일을 하면서 음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촬영 때문에 지방도 많이 찾았다. 맛집을 많이 알고 있는 사진작가들을 따라 향토음식점을 순례했다. 맛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들렀던 평창군 진부의 부일식당이 인상 깊었어요. 산채도 훌륭했지만 그 곳의 두부를 먹어보니 어릴 적 먹었던, 오래 눌러 단단했던 토속 두부 맛이 기억 났어요. 쉽게 구하기 힘든 맛이었어요. 보석처럼 만난 음식이라고 할까요."
서양 음식과의 강렬한 조우는 99년 스페인 이탈리아 출장 때였다. 광고 촬영차 갔다가 서양 음식이 이럴 수 있구나 하며 반해버렸다. 15일 정도 출장기간 현지인들과 동네 밥집을 다니며 라틴의 음식 세계에 빠져들었다.
점차 음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집에서 어설프게 요리도 해봤다.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서울 압구정동의 요리강좌에 들어갔다. 4개월 코스의 취미반 16명 수강생 중에 남자는 강씨가 유일했다. "집에서 무작정 했던 요리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헷갈리던 게 하나 둘씩 정리되는 느낌이었죠. 어질러진 방이 깨끗이 정돈되는 것 같았죠."
요리 강사는 청일점인 강씨를 특별히 챙겨줬다.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예 마스터코스를 더 듣기로 했다.
그가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즈음 천직과 같은 광고가 시들해졌다. 예전 잘나갈 때는 남들 하는 거 보면 우스웠다. 그걸 아이디어라고 내냐며 비웃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도 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많이 등장했다. 자신이 아주 잘한다는 생각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힘들어졌다. 열정이 사라지고 나니 하기 싫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나중에는 정말 하기 싫었다.
결단을 내렸다. 평생 해온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찾기로 했다. 요리를 하겠다고 집에 알렸을 때 가족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힘든 일 억지로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라며 밀어줬다.
그는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다녀왔고, 서울의 레스토랑에 겨우 비집고 들어가 젊은 고참들 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을 배웠다. 사장까지 지낸 사람이 남의 밑에서 일하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냥 배운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그리고 작년 마침내 그만의 가게를 열었다. 유동인구 많지 않은 주택가에 들어 앉은 지금의 가게터를 고른 이유는 넓은 테라스가 있어서다. 열정적으로 음식을 배웠던 이탈리아 식당의 테라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봄이다. 손님을 치르고 남는 자투리 시간, 그는 따듯한 햇볕 내려앉은 테라스?테이블에 앉아 그의 마음을 담금질했던 지중해의 태양을 추억할 것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강성영씨의 "요리 이렇게 배웠다"
강성영씨는 이왕 요리로 승부 걸 거면 본토에 가서 제대로 배워보기로 했다.
그가 이탈리아로 유학 간 곳은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다. 서울에 있는 예비코스 3개월을 밟고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인근의 아스티로 떠나.
고성을 개조한 학교에서 다양한 과정을 배웠다. 이탈리아에선 6개월 과정이다. 2개월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4개월은 학교에서 추천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한다.
그는 시칠리아로 보내달라고 했다. 바닷가 생선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그곳이 너무 멀다며 제노바 근처의 키야바리를 소개했다. 해변 휴양지다. 그곳에서 미슐랭가이드에도 등재된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웠다.
이탈리아도 주방장의 권위는 대단하다. 다행히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그보다 나이가 많았고 잘 가르쳐 줬다. 열심히 배우려 드니 좋게 본 모양이다. 자기 레시피를 다 꺼내놓고 가르쳤다. "말만 통했으면 더 많은 걸 배웠을 거예요."
이탈리아 가기 전 강씨가 그 나라 언어를 배운 기간은 고작 3개월. 주방서 하는 말만 집중적으로 익혔다. 숟가락이나 포크 등 요리와 관련한 도구의 이름만 50여 가지. 데치기, 굽기 등 다양한 조리 표현도 외워야 했다. 백지상태였던 그는 스폰지처럼 그곳의 경험을 빨아들였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기에 힘겹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가게를 차린 건 아니다. 음식 식재료도 다르고 손님도 다르다. 경험할 일자리를 찾는 데 쉽지 않았다. 50이 넘는 나이 때문이다. 압구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한 달간 일해 보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온갖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일을 했다. 정말 막내처럼 일했다.
좀 더 시켜줄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달에 나가라 했다. 다시 대학로의 스위스 식당에 일자리를 얻었고 몇 개월 경험을 쌓았다. 좋은 경험이었다. 레스토랑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깨우쳤다.
이제 가게 문 연지 3개월 됐다. 손님들이 식사가 맛있었다며 명함 들고 갔다가 다시 찾아오면 참 기쁘다. 손님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빠르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의 이탈리안 음식은 소박하다. 양념이 강하지 않고 화려한 꾸밈새도 별로 없다. 가게 이름인 파우자는 쉼이란 뜻이다. 간판 파우자 밑에는 트라토리아라는 작은 글씨가 쓰여있다. 레스토랑보다 격식을 덜 갖춘 식당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우리 말로 하면 동네 밥집 정도 된다. 그는 이탈리아 가정집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듯한 음식을 내놓고 싶다고 했다. 가격도 홍익대 앞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빵과 면발, 치즈 등은 직접 만든다. 파스타에 들어가는 면에는 건면과 생면이 있다. 생면에는 치즈나 고기 등 진한 소스가, 건면에는 해산물 등이 잘 어울린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처럼 파스타엔 면발과 소스와의 궁합이 있다고.
그는 앞으로도 순하면서 재료의 제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가지와 호박을 넣으면 가지 호박 맛이 나는 음식이다. 밖에서 음식을 사먹다 보면 그 곳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음식들이 꽤 많다. 컴퓨터는 그 안이 어떻게 조립됐는지 모르고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음식만큼은 그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인생이모작 음식점 창업 5계명
1.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젊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체력적으로 딸리기 때문에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야 힘을 더 낼 수 있다.
2.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라.
-신문 대충 보고 체인점 잘된다고 덜컥 나섰다간 낭패 본다. 최근 음식은 패션처럼 유행을 탄다. 1, 2년 반짝했다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
3. 요리사로 산다는 건 하인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손님들이 맛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좁은 주방 안에서 땀 흘리며 고생을 해야 한다. 맨날 처리해야 하는 엄청난 설거지와 쓰레기도 요리사의 몫이다.
4. 충분한 학습이 필요하다.
-준비기간 최소 1년 반 이상 필요하다. 철저한 준비다.
5.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음식점 창업 10곳 중 8곳은 망한다고 하지만 남의 식당에서 2년 일을 하고 창업하면 90%는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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