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개개인에 있어서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기에 이 사건에 있어서도 피고인의 생명을 법의 이름으로 박탈하는 것이 옳은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7월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3부 이성호(사진)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사형 선고를 하기까지의 고뇌를 이처럼 솔직히 털어놨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 존폐 논란이 뜨거워진 상황에서 사형을 직접 선고해야 하는 법관의 심정은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보다 더 착잡할 것이 틀림없다.
25일 헌법재판소가 사형제에 대해 재차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자를 생명으로 속죄케 하는' 사형제는 여전히 사회의 논란거리다. 헌재의 결정으로 법관들의 고뇌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부장판사는 "다른 판결도 마찬가지겠지만, 사형이란 법관에게 특히 어렵고 힘든 결정"이라며 "그렇기에 (강호순 선고에 앞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이 부장판사의 고뇌는 판결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형제 자체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생한 사형제는 가장 오래된 형벌이나, 형벌의 본질이 교화에 있다고 보는 문명국가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고, 폐지하는 추세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부장판사의 고뇌는 강호순의 삶에 대한 추적으로 이어졌다. 강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의 결과만 가지고 피고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는 중대한 판단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 성장과정, 가정환경, 결혼경력에서부터 여성관과 생명관, 돈에 대한 집착, 사건이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유족들의 감정까지 종합적으로 살폈다.
강호순의 사이코패스적 성향까지 확인한 뒤 이 부장판사가 내린 결론은 "강은 반문명적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다시 사회에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의 사회환원을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결정하는 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불면의 밤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그는 사형 폐지 주장의 커다란 울림에도 불구하고, "형벌의 목적은 교화 못지않게 응보(應報) 내지 죄형(罪刑)의 균형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형 선고에 따른 인간적 고뇌가 형벌권을 집행하는 대리인으로서 법관의 책무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는 "시민의 생명을 아주 이기적인 동기에서 참혹하게 앗아간 흉악범에게 상응하는 죄값인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유족들과 나아가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에 대한 (법관의) 책무"라고 봤다.
그리고는 마침내 "하나의 우주로서 전 지구보다 소중했던 선량한 피해자 10명의 생명을 앗아간 강호순이 속죄할 길은 생명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25년 법관경력의 이 부장판사는 "7개월 전 사형 선고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만든 필요악인 이 제도의 집행만큼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형제가 유지되는 한 판결문에 기록되지 않을 법관들의 고뇌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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