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이 사실상 무산됐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은법 개정안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논의는 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법 절차의 문제를 들어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은법에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려면 국회법, 인사청문회법도 함께 개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논리였다. 재정위가 2월 의사일정을 마무리한 데다 4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을 논의하더라도 차기 한은 총재가 3월 20일 전후해 임명되므로 이성태 한은 총재 후임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물 건너 간 셈이다.
정부와 한은, 정치권 모두 인사청문회 필요성에 공감해온 터여서 법안 내용이 아닌 절차 문제로 좌초했다는 게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 상당수 여당 의원들조차 "국세청장과 경찰청장도 거치는 청문회를 국가 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한 한은 총재에게 면제해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관련 법을 동시에 고치는 게 정석이지만, 한은 총재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조항을 담은 일부 개정안이므로 부칙을 통해 관련 법안을 고쳐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때문에 일각에선 차기 총재 후보로 거론되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 인사의 청문회 부담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재산 형성 과정의 문제나 코드 인사 논란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 한은법 개정안이 19일 재정위에 상정될 예정이었다가 이번 주로 미뤄진 것도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문회가 흠집내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강력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후임 총재는 지금처럼 국무회의 심의라는 요식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은 총재는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 안정 역할을 맡은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수장이다. 한은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중립적 인사가 임명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대통령 측근이거나 정부와 코드가 맞는 관료 출신들이다. 한은이 정부에 예속되면 나라경제의 건전성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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