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은 사형제 존속에 대한 헌재의 입장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6년 사형제 헌법소원 사건 당시에는 재판관 9명 중 7명이 합헌 의견을 냈지만 이번에 5명으로 줄었다. 더구나 5명 중 2명은 사형 대상 범죄의 축소 등 형벌 조항의 전면 재검토 및 점진적 제도 개선,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한 입법적 개폐 등을 촉구하는 보충의견을 냈다. 사형제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사형제의 개선 내지 폐지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낸 것이다.
헌재 결정에는 사형제 존폐 문제에 관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법률 개폐나 대체 입법 등으로 사형제에 손질을 가할 것을 바라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비록 합헌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헌재 결정은 전체적으로 사형제 폐지 쪽에 가까운 태도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96년 헌법소원 사건 당시 시대적 변화와 국민 합의를 전제로 사형제 폐지 원칙을 지지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사형제 문제에 관한 앞으로의 논쟁은 종전처럼 소모적으로 존폐 여부를 따지는 차원에서 벗어나 사형제를 어떻게 점멸 시킬 지에 모아져야 한다. 그것이 헌재 결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우리 사회에는 응보적 형벌에 집착하는 경향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또 매년 1,000여건 이상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사회적 상황에 큰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형제가 실질적인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정부 수립 이후 920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되는 동안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오판의 위험을 경계하게 만든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극형이 마땅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형이어야 하는지는 신중히 따져볼 문제다. 지난 12년 간 단 한 건의 사형집행이 없어 사형제가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에서 거론됐던 흉악범에 대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종신형) 선고는 사형제를 대체하면서도 응분의 징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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