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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잔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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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잔치, 그 이후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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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동계올림픽을 통틀어 최고선수는 누구일까? 워낙 종목과 메달수가 많은 하계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동계올림픽에 관한 한 이론이 없다.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선수 에릭 하이든이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서 그는 500m서부터 1000m, 1500m, 5000m, 1만m에 이르는 남자 빙속 개인종목 전체에서 모조리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육상으로 치자면 우사인 볼트 같은 100m 스프린터가 1만m까지의 7개 종목 모두를 석권한 것과 같다. 주니어대회에서 몇 차례 그를 꺾었던 한국의 이영하가 그나마 한때의 유일한 경쟁자였다.

■ 하지만 하이든의 위대함은 올림픽에서의 성취에만 있지 않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모든 것을 이룬 그는 곧 사이클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혹독한 훈련 끝에 85년 미국대회에서 우승하고, 이듬해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했다. 그러나 알프스산맥 구간에서 넘어지면서 중상을 입고 운동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러자 이번엔 공부에 눈을 돌렸고, 또다시 무서운 노력과 집중력으로 끝내 스탠퍼드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따냈다. 어느덧 50대에 들어선 그는 미국 스포츠스타들이 가장 신뢰하는 정형외과의사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이제 잔치는 끝났다. 역대 최고의 동계올림픽선수는 하이든이어도, 아마 역대 최고의 동계올림픽'스타'는 김연아일지도 모르겠다. 의심의 여지없이 밴쿠버올림픽 최고의 이벤트는 여자피겨였고, 그는 거기서 단 한 명의 주인공이었다. 기자로서 기억하는 한 그를 향해 쏟아낸 세계주요언론의 관심과 흥분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그 중 일부만 대충 엮어도 "공기보다 가볍게, 깃털처럼 떠다니는, 오직 하늘만이 한계인 범접할 수 없는 여왕폐하" 쯤이 되겠다. 이 정도면 '냉정한 객관적 기술'이라는 정통 저널리즘의 원칙까지 수정해야 할 판이다.

■ 다들 "김연아가 이제 부담을 털었다"고 하지만 그가 평생 져야 할 짐은 더 커졌다. 앞으로 그의 모든 삶은 세계의 유난스런 주목과 평가대상이 될 것이다. 다시는 도달하기 힘든 높이에 오른 만큼 평가는 점차 박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언론은 하이든을 칭찬하면서 "젊은 날 업적으로만 일생을 사는 많은 스포츠스타들은 절반 밖에 완성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썼다. 그러므로 김연아에게 진짜 어려운 도전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그 도전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건 물론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기쁨을 그에게서 받았으므로.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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