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했다. 박미희(51)씨도 그랬다. 누군가는 독하다고 했다. 아이가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일곱 살. '피겨 맘'의 인생이 시작됐다. 수없이 얼음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을 때도, 허리 통증 등 부상에 짓눌려 진통제를 맞고 신음할 때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부담감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홀로 울 때에도, 엄마는 언제나 아이 곁을 지켰다.
'자식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엄마 맞아?'(김연아의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중)라며 철 없이 내 뱉은 말이 비수가 돼 꽂혔지만, 엄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14년을 하루 같이 매일 오전9시부터 새벽1시까지 엄마는 아이의 '그림자'였다. 아이가 전 세계를 누비며 각종 대회 우승을 휩쓸 때도 엄마는 늘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부쩍 성장했다. 피겨 기술의 향상도 그랬지만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옛날 페르시아 왕이 슬플 때 좌절하지 않고 기쁠 때 오만하지 않기 위해 반지에 새기고 다녔다는, 아이가 늘 가슴에 품었던 글귀다. 어느덧 엄마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스케이트는 나뿐만 아니라 엄마의 삶도 힘들게 하고 있었다'고 했다.
운명의 4분10초가 흘렀다. 아이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완벽한 연기를 마무리한 뒤 벅찬 감동에 처음으로 눈물을 쏟았다. 아이는 "왜 울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차마 아이의 경기를 보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던 엄마는 그제서야 눈을 떴다. 가슴이 벅차 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아이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엄마는 그 동안 발 한번 제대로 뻗지 못하고 전 세계를 누벼야 했던, 퉁퉁 부어 있어 늘 미안했던 두 다리에게 이제는 휴식을 허락할 수 있게 됐다.
아이가 피겨를 처음 시작할 때 그의 첫 스승이었던 류종현 코치가 "어머니, 가정 형편이 되십니까"라고 물어 '오케이'했던 그 순간부터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기까지의 긴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박씨는 "경기 전에 연아에게 평소대로만 하라고 했는데 초반 점프 3개를 성공하면서 우승을 직감했다"며 "숙소에 들어가서 한 번 꼬집어 보고 싶다"며 기쁨을 전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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