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경기 안산시에서는 선감도에 위령비를 세우려는 계획이 추진됐다. 선감도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세운 부랑청소년 감화시설 선감학원이 있던 곳. 서울과 인천 수원에서 선감학원으로 끌려온 소년들은 영양실조로 죽거나 도망치다 붙잡혀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 일부는 바다를 건너 화성 마산포로 탈출을 시도하다 조류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숨진 소년들은 선감학원 근처 야산에 매장됐다. 이런 소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였다. 당시 안산시는 소년들의 유골을 발굴해 큰 봉분을 만들고, 2000년 8월 15일 위령비를 건립하기 위해 1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와 비석 설계까지 마쳤지만 이 계획은 이듬해 5월 명확한 이유 없이 흐지부지됐다.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23일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면적 3.7㎢에 해안선 길이가 8㎞인 조그만 섬 선감도는 88년 5월 대선·불도·탄도방조제, 94년 1월 시화호 주방조제가 잇따라 완공되며 육지가 됐다. 과거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에는 지난해 10월말 개관한 국내 최대 규모 아트레지던시인 경기창작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창작센터의 전신은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이고, 같은 자리에 80년대 초까지 부랑아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있었다. 부랑아 수용시설은 일제시대 선감학원과 맥이 닿는다.
창작센터 앞에서 경기도청소년수련원 방향으로 야트막한 야산이 있다. 이 곳 사람들이 공동묘지라고 부르는, 위령비를 세우기로 했던 바로 그 자리다. 1995년 10대 소년 2명의 유골이 발굴됐고, 몇 년 전 한 케이블채널의 미스터리 프로그램은 원혼이 서렸다고 방송했다. 아직도 많은 유골이 묻혀있지만 야산은 유골이 나온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방치된 상태다. 어지럽게 자란 수풀 사이에는 근처 업소가 내건 현수막 한 조각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인근 마을에는 선감학원을 기억하는 홍석민(75)씨가 살고 있다. 그는 선감학원 통역교사로 채용된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씨는 위령비 건립 무산에 대해 "이 일대 개발 시 장애가 됐다고 하는 설도 있고, 관련 기관들이 서로 미루다 유야무야 됐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선감도의 슬픈 역사는 일본인이 쓴 <아!선감도> 란 자전적 소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89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95년 한국어판이 나왔고, 우리나라 한 일간지에도 연재됐다. 아!선감도>
<아!선감도> 의 작가 이하라 히로미츠(75·井原宏光)씨는 8살 되던 해 선감학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로 와 2년간 살았다. 홍씨와는 초등학교 동창 사이다. 45년 일제 패망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선감학원의 선명한 기억은 지우지 못했다. 아!선감도>
이하라씨는 한국의 지인들에게 "나는 즐거웠던 선감도가 한국 아이들에게는 슬픈 곳이었다. 선감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남기기로 결심했다"고 소설을 쓴 이유를 전했다.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러져간 소년들을 위해 위령비를 세우자고 처음 제안한 것도 이하라씨였다. 자신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주선하겠다는 의견도 냈다.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1923년 조선감화령을 발표하며 그 해 원산에 최초의 감화원 영흥학교를 세웠고, 38년에는 전남 무안군 고하도에 목포학원을 만들었다. 감화원은 8~18세 미만 부랑소년들이나 불량행위 우려가 있는 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가 42년 5월 19일 설립한 마지막 직영 감화원(感化院)이다. 처음 목표는 산업전사를 키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설립 취지가 흐려졌다.
독립의지를 말살시키고 전쟁의 소모품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설로 성격이 변모했다. 500여명이 생활했던 선감학원도 수용시설은 열악했고, 외부와의 접촉은 불가능했다. 이들은 소년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옷을 모두 벗긴 뒤 재웠다고 전해진다. 학원 운영은 철저하게 강제 노역을 통한 자급자족이었다.
정진각 안산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은 "섬에 가뒀다는 그 자체로 소년들을 중범자 취급한 것이고, 소년들이 어떻게 선감도까지 잡혀왔는지도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위령비 건립은 잊혀졌지만 이하라씨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 동안 수 차례 선감도를 찾았고, 3월초 다시 입국해 선감도를 방문한다. 선감학원에 관심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 및 주민들과 간담회도 예정돼 있다. 홍씨는 "위령비가 무산돼 속상한 사람들이 꽤 많다"며 위령비 건립 문제가 다시 한번 불거질 것을 암시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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