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처진 어깨와 마지못해 머금는 미소. 2등 또는 3등을 한 한국선수들은 시상대에 선 기쁨보다는 1등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외국 선수들이 은메달 또는 동메달을 목에 걸고 더없이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퍽 낯선 모습이었죠. 특히나 '효자종목'이라면 금메달이 아닌 이상 보는 입장에서도 선뜻 박수를 보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시간으로 27일 밴쿠버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가 끝난 퍼시픽 콜리시엄. 경기를 끝낸 한국선수들이 대형태극기를 들고 빙빙 돌더니 링크 한가운데 태극기를 펼칩니다. 태극기 한 귀퉁이에 열을 맞춰 선 선수들은 이내 넙죽 큰절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가르쳐 준 코치들과 끝까지 응원해 준 관중을 향한 감사 인사였네요. '큰절 세리머니' 이전에 곽윤기는 피니시 라인에 엎드려 입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남자대표팀의 순위는 2위였습니다. 금메달을 노렸지만,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 만큼 치열한 레이스가 펼쳐진 탓이죠. 올림픽 2연패도 물거품이 됐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더없이 밝았습니다. 대회 초반부터 동료간 충돌로 어린 나이에 버거우리만치 마음 고생이 많았던 선수들이었죠. 바라던 색깔은 아니었지만, 금메달만큼 소중한 은메달로 그들은 마음에 품었던 돌덩이를 멀리 내던질 수 있었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 금메달을 목에 건 캐나다, 동메달의 주인공 미국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포옹하는 모습은 올림픽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메달 자체가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선수들. 잔인한 '1등주의'에서 스스로 벗어난 선수들은 올림픽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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