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칠레를 강타한 규모 8.8의 지진은 지난 1월 아이티 지진의 1,00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으나 그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전문가들은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지역단위로 지진대응팀을 운영한 것이 지진피해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진발생 시 칠레와 같이 잘 짜인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을까? 정답은 '노(No)'이다. 전문가들은 내진설계도 재난대응책도 모두 낙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방방재청의 '시설물 내진실태 현황'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전국 건축물과 학교, 병원, 철도 등 시설물 107만8,072곳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은 18.4%인 19만8,281곳에 불과하다. 특히 전국 초중고교는 13.2%만이 내진설계가 적용됐고, 3층 이상 건축물 역시 16.3%만이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한국은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내진설계를 도입해 현재 3층 이상 또는 전체면적 1,000㎡ 이상 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5년 이전까지는 내진설계는 6층 이상, 연면적 10만㎡이상의 건축물에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문제는 국가 재난상황 시 방재활동의 거점이 되어야 할 재난안전대책본부조차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이 드물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와 상황실 251곳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은 27%에 불과하다.
이호준 삼성방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진은 단순히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파괴, 화재, 지하배수시설 파괴로 인한 침수, 생산기능 마비로 인한 경제손실 등의 피해를 한꺼번에 가져온다"며 "일단 지진이 나면 얼마나 빠르고 체계적으로 국가가 이에 대응하느냐가 피해규모를 축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우리의 재난방재 인식은 너무 안일하다"고 꼬집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내각부는 2005년부터 '도쿄에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해 전력이 끊기고 도로가 파괴된다'는 가정하에 각 기관이 24시간 혹은 48시간 내에 이를 복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서를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 같은 지침을 마련한 기관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 연구원은 "지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일수록 내진설계는 경제적 효율을 생각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물 위주로 강화하고, 비용보다는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방재계획 수립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우리는 내진설계도 방재계획도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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