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어스톡스(Navier-Stokes) 방정식. 국제적으로 100만불의 상금이 걸린 수학 난제.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이 방정식을 자신들의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건물 지하 연습실은 중년의 신사들이 내뿜는 땀과 열기로 가득 찼다. 아주대 미디어학부 신현준 교수는 고 김현식 작곡의 '한국사람'에 맞춰 하모니카를 연주했고, 보컬을 맡고 있는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윤경현 교수는 에릭 클랩튼의'원더풀 투나잇'을 열창했다.
때로 연세대 컴퓨터 공학과 이인권 교수가 작곡했다는 '편히 쉬어' '사과나무'를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컴퓨터그래픽스 연구자들이 모여 결성한 밴드 나비어스톡스의 멤버들.
하지만 이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음악은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난해한 밴드 이름과 달리 여느 카페를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친숙한 것들이다. 밴드마스터를 맡고 있는 신현준 교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나비어스톡스 방정식으로 액체나 가스 등의 유체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자연현상의 컴퓨터그래픽 구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비어스톡스 밴드의 결성도 어려운 공식에서 나오지 않았다. 학회 활동 등을 통해 친분을 쌓은 이들이 2005년도 라이브 무대가 있는 한 레스토랑에 같이 갔던 게 발단이 됐다. 누군가 구석에 놓여 있던 악기를 집어 들어 연주했고, 이에 흥이 난 다른 교수들이 각각 드럼, 기타, 보컬 등을 맡으며 처음으로 밴드 연주를 한 것이다. 모두 중ㆍ고교 시절 취미로 악기 한두 가지는 뚱땅거렸던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 교수는 "그때 누군가가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밴드를 해보자며 제안한 것이 지금의 나비어스톡스가 됐다"고 멋쩍게 웃었다. 현재 나비어스톡스는 컴퓨터그래픽스 분야 교수와 연구생 약 1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연주 멤버는 그때그때 탄력적으로 꾸려진다.
나비어스톡스는 요즘 결성 이후 어느 때보다 바쁘다. 올 12월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그래픽스 국제회의 중 하나인 '시그래프(SIGGRAPH) 아시아'의 리셉션 공연을 맡아 맹연습 중이기 때문이다. 올해 3회째인 시그래프 아시아에는 교수와 연구자, 영화업계 관계자 등 국내외에서 8,0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신 교수는 "소규모 학회 차원의 공연을 위해 재미 삼아서 시작한 밴드가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국제 무대에 서게 됐다"며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인 만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의 실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비어스톡스 밴드는 2005년도에 결성됐지만 2007년 12월에 첫 단독공연을 할 만큼 수준급의 밴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신 교수는 "모든 밴드 구성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며 "올해 말에는 앨범을 내고 아마추어 밴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성을 갖춘 정식 밴드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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