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의 양대 부국인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중남미 국가들이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립하기로 합의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22, 23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중남미-카리브 정상회의(CALC) 및 리우그룹 회담'에 참여한 32개국 정상들은 2011년 베네수엘라 리우그룹 회담 이전까지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와 차별화된 새 국제기구 설립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23일 정상회의 폐막에 앞서 "중남미 지역을 하나로 묶고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수년 전부터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추진되어온 중남미 국가들만의 새 국제기구 설립이 본격화됨에 따라 지금까지 '경제적 약자'란 이유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 지역의 입지는 훨씬 강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지역 국가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하고 특히 대미 관계에서의 입장차이가 커 실제 기구설립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차베스 등 좌파 지도자들은 "새 기구는 반드시 OAS를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칼데론 대통령 등 중도 혹은 우파 지도자들은 "이후에도 계속 OAS에 참여할 것"이라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22일 밤 리우회담 정상 만찬 자리에서 터진 사건은 새 기구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앙숙으로 알려진 콜롬비아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이 욕설에 가까운 말을 주고받은 것. 베네수엘라 정부의 무역제재에 불만을 품어온 우리베 대통령이 먼저 차베스에게 "모욕을 하려면 남자답게 마주보고 하라"고 말하자, 격분한 차베스 대통령이 "지옥에나 가라"고 맞받아쳤다. 친미와 반미로 나뉜 두 나라 정상이 새 국제기구의 출발선에서부터 격한 감정을 터트린 것이다.
진보성향의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는 23일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며 중남미 국가들의 기구구성 합의를 높이 평가했지만 "일치되지 않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통합에 대한 신뢰부족으로 새 기구가 중남미 결집에 요긴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편 새 기구의 수장으로는 연말 퇴임하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23일 정상회의에서 차베스 대통령이 룰라 대통령에게 새 기구의 리더로 나설 것을 제안했다. 언론들은 "룰라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극단적이지 않고, 미국은 물론 모든 중남미 국가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리더로 적합하다"고 전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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