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정책 4개 부처로 쪼개져… 경쟁력 지수 해마다 '내리막'
국가의 정보기술(IT)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여러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비교 지수다. 이는 곧 한 나라의 IT 정책을 평가하는 성적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IT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IT 성적표는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24일 발표한 ‘정보통신기술(ICT) 개발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 159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3위다. 언뜻 보면 높은 수치 같지만 지난해보다 한 계단 내려 앉았고, 연속 1위를 차지한 2007년과 2008년에 비교하면 명백한 하락세다. 인터넷 가입자 숫자는 세계 2위였으나 비싼 초고속 인터넷 요금(34위)과 비싼 이동통신 요금(30위) 등이 문제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지난해 9월에 발표한 국가별 IT경쟁력 지수에서도 한국은 2008년 8위에서 지난해 16위로 추락했다. 2007년까지 세계 1위를 달리던 ITU의 정보통신발전지수는 지난해 처음 2위로 내려섰고, 국제경영개발원(IMD)의 IT국가경쟁력 지수도 2007년까지 6위 수준이었으나 2008년과 지난해 모두 14위로 주저앉았다.
IT 컨트롤 타워 부재로 IT경쟁력 하락
이 모든 일이 공교롭게도 2008년 이명박정부들어 구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맞춰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과거 정통부가 수행하던 IT관련 정책은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관광체육부로 각각 쪼개졌고, 방통위는 통신서비스와 방송정책만 담당한다.
방통융합 시대에 맞춰 방통위가 출범했는데 왜 국가의 IT 경쟁력은 떨어질까. 한마디로 IT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가장 큰 요인이다.
현재 각 기능을 쪼개놓은 상황에서 부처간 협의를 거치지 않는 한 방통융합 발전에 필요한 총체적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최근 임채민 지경부 1차관이 스마트폰 산업 활성화를 위해 “무선데이터 무제한 정액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방통위와 잡음이 일어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방통위의 한계…방송에 치우친 조직 성격, 예산 부족, 사기 저하
방통위는 IT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 5명의 상임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정책을 결정하는 합의제 방식은 규제에 효과적이지만 산업을 진흥시키기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도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방통위의 합의제 방식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석채 KT 회장도 지난해 국가경영전략연구원 포럼에서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통신 정책을 다루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위원회 성격이 IT보다 방송에 치우쳤다는 뜻이다.
예산 부족도 문제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2008년 기준 방통위의 재정 규모를 분석한 결과 7,149억원으로 문화부의 관광사업국 재정 규모인 7,708억원보다 적었다.
직원들의 사기 저하도 한 몫한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방통위는 5명의 상임위원을 여당과 야당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른 부처처럼 장ㆍ차관자리가 없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1급 실ㆍ국장 이상 승진하기 힘들다. 그 결과 보직을 받지 못한 고위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말 방통위 인사에서 무려 7명의 국장들이 본부 대기 또는 파견 명령을 받았다. 방통위는 고육지책으로 차관급 사무총장직 신설을 추진중이나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명박정부의 ‘헤쳐모여’식 정부조직 개편 사례인 방통위는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IT 정책 진흥을 위한 정부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국책 IT연구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이 상태에서 IT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 도출은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 차원의 새 틀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 "빠른 의사결정 필요" 정통부 부활 목소리
방송통신위원회는 합의제 기구다. 5명의 상임위원들의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렵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의사 결정이 늦고, 방송은 지상파, 통신은 대기업 위주로 편향된 정책 운영을 하고 있어 곳곳에서 잡음이 생긴다는 것이 관련전문가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특히 ITㆍ통신 분야에서는 방통위 출범 후 "한국의 IT산업이 후퇴됐다"는 목소리와 함께, '정보통신부 회기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 내부에서는 국장급 인사들이 대부분 정통부 출신인 점과, 방통위 출범 후 방송위원회 인력이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관련해 "3년 내에 정통부 인사들만 살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방송사업은 지상파 등 일부 서비스사업자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방송장비산업과 중소규모 사업자는 소외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케이블업체를 비롯한 지상파에 비해 상대적 열세에 있는 사업자들의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통신사업자의 경우 과거 정통부시절에 발 빠른 정책결정이 이뤄졌는데, 방통위 출범 후 방송담당 위원에게 용어부터 기술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설명하는 구조라서 사안이 결정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관련, 이 분야 전문가들은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의 장점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각 위원들의 전문성을 살리고, ITㆍ통신사업 같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들은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디지털기술과 IT는 기술 주기가 짧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의사결정 시스템을 슬림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5명의 상임위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조율할 수 있는 책임자가 필요하다"며 "기술개발 육성, 연구개발(R&D)은 좋은 의사결정 보다는 빠른 의사결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통위와 지식경제부 업무가 중복되는 구조에 대한 혼란성도 지적됐다.
최성진 서울산업대 교수는 "지경부와 방통위는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중복되는 기능이 많아 혼란스럽다"면서 "정통부 부활이 쉽지 않다면, 중복되는 정책들은 정확히 역할분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임현주기자
■ 이경자 방통위 부위원장 "경쟁력 저하는 조직 아닌 산업 문제"
대통령 직속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여당과 야당이 공존하는 실험적인 조직이다. 3년 임기의 상임위원 5명 가운데 대통령이 위원장 포함 2명을 지명하고 국회에서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부위원장은 여당과 야당측 위원이 번갈아 맡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경자(사진) 위원은 야당이 추천했다. 그만큼 이 부위원장의 의견은 상대적 객관성과 설득력을 갖는다.
24일 만난 이 부위원장은 방통위를 새 시대에 맞는 변화와 실험의 산물로 정의했다. 그는 "방통위의 등장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변화"라며 "새 조직이 뿌리내리려면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이 방송통신정책을 위해 위원회 조직을 두고 있다"며 "정보기술(IT) 경쟁력 저하는 위원회 출범 때문이 아니라 IT 산업 중심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유선에서 무선통신으로 이동했는데 이에 대한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IT 정책 조율을 위한 컨트롤 타워를 신설하기보다 부처간 협력을 강조했다. 이 부위원장은 "정책의 궁극적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이라며 "다양한 부처들의 협력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부처간 업무가 겹치지 않도록 정교한 조정과 협력체제를 갖추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합의제 성격의 위원회가 IT 산업 진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 부위원장은 "합의제는 정책 결정에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결정을 막아 정책 오류를 줄일 수 있다"며 "정책도 서비스인 만큼 공익을 위한 신중한 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통위의 정치적 실험은 실패했다. 이 부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 불가가 이를 대변한다. 부위원장은 위원장 부재시 국무회의에 참석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야당 추천을 받은 이 부위원장은 현재 국무회의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 다른 국무위원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란다. 여당측인 송도균 위원이 부위원장을 맡았던 시절에는 국무회의 참석을 막지 않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존하는 오바마식 행정부 구성은 국내에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이자 유일한 정치 실험인 방통위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부위원장은 "사람들의 의지 문제"라며 "위원회의 독립권이 보장받으려면 임명권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에둘러 답변했다.
이와 더불어 이 부위원장이 방통위에 대해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구성원들의 사기 저하다. 그는"장ㆍ차관직이 없다 보니 직원들이 실ㆍ국장 이상은 승진할 수 없다"며 "신나서 일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이를 해결해 줄 대안이 없어서 갑갑하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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