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한반도는 2분48초간 멎었다. 숨죽임에 멎었던 심장이 '와'하는 환호와 함께 일순 터졌다. 오감(五感)은 오직 한곳에 쏠렸다. 다툼도 고민도 시름도 잊은 3분을 만끽한 뒤 반도는 환희에 들썩였다. '김연아 세계신기록, 쇼트프로그램 1위.'
짧은 순간과 간결한 문구가 국민에게 선사한 건 평소엔 입에 담기 멋쩍은 '행복'이란 단어였다. 사람들은 "기쁘다"는 말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숨통을 트여준 2분48초는 종일 반복됐다.
이날 김연아(20)와 곽민정(16)을 배출한 경기 군포시 수리고 3학년8반 교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20ㆍ일본)의 기록(73.78점)이 나오자 학생들은 "설마~" 하고 술렁거렸다. 다음은 김연아 차례. 아름다운 점프에 감탄사가 터졌지만 이내 숨을 죽였다. 최선의 연기를 펼친 이후 지상 최고의 성적(78.5점)을 거두자 참았던 함성이 교정을 뒤흔들었다.
홍나경(18)양은 "세계선수권은 우승했어도 올림픽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됐을 텐데 정말 멋지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지환(51) 수리고 교감은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너무 잘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진 실력만큼만 발휘해 주라"고 소망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이철두 경기도교육위원회 의장 등도 함께 했다. "이 학교가 연아를 키운 학교다. 수리고가 학력과 인성 등 모든 면에서 경기도 최고의 학교로 우뚝 서길 바란다"(김 교육감), "한마음으로 응원한 우리 모두가 금메달"(이 의장) 등 덕담이 이어졌다. 360여명의 학생이 단체응원을 한 수리고는 프리스케이팅이 열리는 26일 오전엔 강당에서 응원전을 할 계획이다.
시민들은 홀린 듯 TV 앞에 있었다. 대학생 강채희(25)씨는 "공부하다가 봤는데 경기 직후에 행복을 전하는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느라 공부도 못한 채 하루가 다 갔다"고 웃었다. 회사원 김헌주(30)씨는 "워낙 큰 무대라 연아보다 내가 더 긴장했는데, 역시 연아"라고 엄지를 세웠다.
이날 오후가 환희의 걸작이었다면 오전의 12분58초 남짓은 각본 없는 반전 드라마였다.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서 경쟁자의 실격판정으로 '기적의 금메달'을 거머쥔 이승훈(22) 선수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도지언(27)씨는 "처음엔 어떻게 된 일인지 헷갈리고 심판들이 판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조마조마했는데, 금메달을 목에 다는 모습을 보고서야 실감이 나더라"고 했다. 이날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은 라디오나 DMB 등으로 이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환호로 흘러 넘쳤다.
온라인도 달아올랐다. 네티즌들은 "대단한 질주본능" "유쾌한 금메달" 등의 칭찬으로 이 선수를 격려했고, 이 선수의 미니홈피는 금메달을 목에 건지 두 시간도 안돼 700건의 축하 글이 올라왔다. 김연아의 미니홈피와 팬 카페도 선전기원 및 응원 메시지를 올리려는 네티즌들로 가득 찼다. 실로 평생 가슴에 담을만한 2분48초와 12분58초였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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