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53분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휠체어를 타고 와 동갑내기 친구 배삼룡씨의 영정 앞에 부축을 받고 선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84)씨의 어깨가 들썩였다.
연신 돋보기 안경을 쓸어 올리며 눈물을 훔쳤지만, 몇 방울이 주름진 뺨을 타고 흘렀다. 구씨는 언제라도 주사를 연결할 수 있게 손등에 혈관 확보용 카테터를 꽂은 오른손으로 고인의 영정 앞에 잔을 올린 뒤 한참을 말 없이 서 있었다.
"조문만 하고 바로 나와야 한다"는 간병인의 당부에 "내가 어떻게 금방 가느냐"며 역정을 낼 때만 해도, 빈소에 들어서 유가족들을 대할 때도 담담하던 그였다. 고인에게 술을 올리고 향을 피운 뒤 다시 휠체어에 탄 구씨는 빈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적은 것을 보고 "왜들 이렇게 없어"라며 섭섭한 기색을 비쳤다.
이날은 KBS 코미디언실장 공모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인의 아들 동진씨의 손을 잡으며 "해결 잘해. 죽고 난 다음 (걱정 없이) 잘 가게"라며 밀린 병원비 문제를 잘 해결하라고 당부했다.
기자들을 만난 구씨는 "코미디라는 게 누구 한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면서 "걔(배삼룡)랑은 잘 맞았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지난해 초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수술을 받은 구씨는 지난해 12월에는 소파에서 자다 굴러 떨어져 손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배씨의 부고를 접한 23일에도 강남의 한 병원에서 신장 투석 치료를 받았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배씨의 유족에게 "대한민국 희극계의 큰 별이 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 장례는 25일 오전 8시 치러진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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