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청 마피아'의 제식구 감싸기가 '비리 백화점' 낳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교육을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다. 매달 교육개혁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교육에 천착하겠다고 한다. 또 교육 비리와 알몸 뒤풀이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저런 언급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교육 살리기를 위해 직접 총대를 맬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이 정말 심각하기 때문이다.
교육계에 만연한 인사 및 이권 비리, 구조화한 학교 폭력, 자율형사립고 등 교육 정책의 혼선, 지지부진한 사교육 절감 방안 등 걱정되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4회에 걸쳐 한국 교육의 본모습을 비추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
"모든 부패의 최종 종착점은 교육계"라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정치인 기업인 학자 공무원 등 사회 지도층은 물론, 조직폭력배 사기꾼 절도범 등 범법자들까지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 때문에 검은 돈이 마지막으로 흘러들어 가는 곳은 교육계일 것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교육계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자정이 불가능한 상태다. 학연과 인맥으로 연결된, 뿌리 깊은 제 식구 감싸기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교육 비리 근절은 요원하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목소리다.
비리의 핵심은 인맥과 학연
서울시교육청에는 'OO 마피아'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전임 교육감들과 같은 지역 출신들이 10여년에 걸쳐 요직을 장악하고, 강력한 인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몇 차례의 인사로 이 지역 출신들이 흩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교육청엔 A사대 라인도 강하다. 특히 인사 라인에 많이 포진돼 있다. 시교육청의 모 직원은 "간부가 되면 아무래도 자기 사람을 심기 마련이지만 심하다 싶을 정도"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작년 말부터 검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장학사 매관매직 사건도 A사대 출신들이 관련돼 있다.
장학사시험과 관련해 교사로부터 돈을 받은 장학사 임모(50)씨는 당시 교육정책국장이었던 김모(60)씨의 A사대 후배다. 김씨는 14억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책상 서랍에 보관해 오다 총리실 감찰팀에 적발돼 비자금 의혹이 제기됐으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강남 지역의 고교 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때문에 전직 교육청 최고위층이 관련됐을 거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교육감선거가 직선제로 치러지는 바람에 줄서기는 더욱 심해졌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선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각종 인맥이 동원되고, 당선이 됐을 때는 이들에 대한 보은 차원의 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의 감사 업무를 담당했던 모 사무관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모 후보의 선거 기획에 작년 말부터 참여하는 등 줄서기를 했다가 적발돼 지난달 직위 해제됐다.
교장들에 대한 이른바 전관예우도 문제다. 교장의 경우 특정 교대나 특정 사대 출신 비율이 높아 선ㆍ후배 관계가 형성돼 있다. 은퇴한 교장들이 현직 후배 교장에게 납품 관련 외부 업체를 소개하며 입찰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때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작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초등학교장 가운데 교대 출신은 95.4%이고,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가 S교대 출신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한번쯤은 교육계에서 큰 폭의 물갈이가 있어야 한다. 견제 세력 없이 선ㆍ후배 관계로만 엮여 있기 때문에 비리가 생기기 쉽고, 문제가 불거져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교육청은 비리 백화점
교육계 비리는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교사 임용, 장학사 시험, 교감ㆍ교장 승진과 관련해 금품이 오가는 인사 비리를 비롯해 학교 시설 공사 관련 비리, 교사들의 촌지 수수, 일선 학교의 성적 조작 등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불거져 왔다.
특히 최근에는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시행 중인 방과후학교까지 교장들의 뇌물 수수 통로로 변질됐다. 이달 초에는 방과후학교 업체로 선정해 주겠다며 학생 1인당 1만원을 요구해 700만~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전ㆍ현직 초등학교장 5명이 기소되기도 했다.
학교 시설 공사 역시 비리 취약 지구로 꼽힌다. 지난해 9월 부적격 칠판을 사 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긴 서울 지역 교장 13명이 무더기로 적발된 사례가 있고, 2006년 광주에선 신설 학교 기자재의 납품 비리 사건이 발생했다. 그 외 교과서와 급식, 창호 공사 등도 돈 냄새가 자욱한 항목들이다.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미치는 시험 문제 유출과 성적 조작은 비리 가운데서도 가장 죄질이 나쁘다. 2005년 서울 M고에서는 교장 교감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받고 내신 성적을 조徘?혐의가 드러나 2명이 구속되고, 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또 서울 지역의 다른 고교에서는 교사가 검사 자녀인 학생의 답안지를 고쳐 줬다가 적발되는 등 성적 조작과 시험지 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사들의 촌지 수수는 가장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비리 형태다. 1999년에는 모 초등학교 여교사의 촌지 기록부가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반 학생 30여명의 명단과 촌지 액수, 선물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충격을 줬다. 특히 스승의날이 끼어 있는 5월 한 달간 무려 300만~400만원을 받을 정도로 촌지 규모가 컸다.
교육계는 촌지 근절 운동을 계속 펼치고 있지만 올 초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가운데 18.6%가 '촌지 제공 경험이 있다'가 응답해 여전히 촌지 수수 관행이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백약이 무효… 비리 대책 아닌 의지가 문제
최근 교육 비리가 잇따르자 갖가지 대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진짜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에도 비리 사건만 불거지면 그럴싸한 이름의 대책들을 내놓았지만 그 이후 흐지부지해지면서 비리는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시설 공사 비리가 터지자 기술직 공무원 50% 이상을 전보시키고 지역교육청 시설과장과 팀장, 사학시설팀 직원을 전원 교체하는 등 대규모 쇄신 인사를 단행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TF도 구성했다.
올 1월 장학사 선발 과정에 비리가 드러났을 때도 시교육청은 곧바로 부패 행위자에게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고 부패 행위 신고를 하면 최대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반부패 청렴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각종 인사 비리, 학교 시설 공사 및 방과후학교 업체 선정 비리 등을 막고자 외부 전문가, 학부모가 참여하는 외부 감사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2010년 공직 윤리 확립 계획을 내놓았다. 교과부는 또 판ㆍ검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외부 인사를 감사관으로 공개 임용키로 하고, 시ㆍ도교육청 감사 기구의 수장도 같은 식으로 뽑도록 권고했다.
이런 종류의 대책들은 과거에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의지 부족으로 대부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2006년만 해도 각종 비리에 연루된 부적격 교원들을 중징계하고 퇴출할 수 있도록 시ㆍ도교육청별로 교직복무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곤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대전 울산 강원 충남 등 8개 시ㆍ도교육청에서는 위원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다른 교육청에서도 대부분 1, 2차례만 심의가 이뤄졌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3년간 고작 4번 열렸다.
서울시교육청이 부조리 행위 신고 보상금제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처음 도입을 시도했지만 교육계 반발에 밀려 시행되지 못했고, 지난해 7월에는 촌지 수수나 급식 및 입찰 비리 등을 신고하면 최고 3,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마련했다가 며칠 만에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초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대책보다는 반드시 시행해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이런 의지가 없다면 비리 발생_대책 발표_비리 발생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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