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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룡씨 별세/ 힘든 시절 웃음 주고… 하늘로 옮긴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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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룡씨 별세/ 힘든 시절 웃음 주고… 하늘로 옮긴 무대

입력
2010.02.2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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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 아니면 천치 바보 짓을 흉내 내가며 겨우겨우 연명해온 불쌍한 육신이올시다. 억지로 자랑해보라면 면구스러운 표정을 앞세워 '외길 30년'이나 중얼거릴 어릿광대올시다."(자서전 <바보스타 배삼룡> (1975) 서문에서)

'어릿광대'를 자처하던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씨가 23일 영면에 들었다. 그는 해방 직후 1946년 스무 살 때 유랑극단에 입단해 2006년 무대에서 쓰러져 입원할 때까지, 60년을 온전히 우리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데 바쳤다.

철모르는 아이들까지 '비실이'라고 놀려도 그냥 허허 웃어넘겼다. 딸이 학교에서 "삼룡이 딸"이라는 놀림을 받고 돌아와 따져도, 돌아서서 잠긴 목으로 "학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는데"를 되뇌었을 뿐이었다.

1926년 3월 15일 현재 북한 땅인 강원 양구군 북면 본리에서 배진사댁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친의 외도와 도박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춘천으로 이사한 초등학교 때 시내 극장과 서커스단을 기웃거리며 배우의 꿈을 키우다 중일전쟁을 피해 건너간 일본에서 중ㆍ고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귀국해 다시 유랑극단을 접한 그는 당시의 감동을 "뭇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대에 올라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배우, 열광하는 관중들, 박수와 스포트라이트, 분 냄새, 한숨과 탄성의 엇갈림이 나를 미치게 사로잡았다"고 표현했다. 어머니의 쌈짓돈을 훔쳐 유랑극단을 따라나선 것이 그의 배우 인생의 시작이었다.

전국을 떠돌아 다니면서 그는 사람들을 웃기거나 노래를 부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61년 가수 백야성이 부른 '잘 있거라 부산항'과 '녹슬은 청춘' 등의 인기 가요는 그가 노랫말을 쓴 것이었다. 1964년에는 영화 '수수께끼 사나이'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방송가에서는 20여년의 유랑극단 생활, 작사가, 시나리오 작가 생활로 다져진 그의 끼를 탐냈다. TV가 보급되면서 안방극장으로 국민의 시선을 붙들기 시작하던 1973년, TBC와 MBC 관계자들이 그를 데려가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서 몸싸움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힘든 시절, 거부감 없이 웃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로 '바보' '비실이'를 연기한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이른바 '개다리춤'의 전신인 '비실이춤'을 앞세워 코미디언이자 가수, 영화배우, 광고모델 등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하던 그를 언론은 '코미디의 황제'라 불렀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닥쳐 왔다. 식품회사, 호텔 등 운영하던 회사들이 1980년대 들면서 심한 경영난에 빠져 하나 둘 도산했다. 군사정권의 '저질 코미디 규제' 파동까지 겹쳐 방송에 출연할 수도 없었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 생활을 하다 3년 뒤 밤무대 출연으로 연예 활동에 복귀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던 지난해 8월 병원측은 가족을 상대로 진료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밀린 병원비가 2억여원이다.

노년의 생활고도 무대를 향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95년 배우인생 50년을 기념하는 KBS '빅쇼'에서 건재함을 과시했고, 1998년에는 흡인성 폐렴으로 투병 중에도 그토록 꿈꿨던 정통 악극 '그 때 그 쇼를 아십니까' 공연 무대에 섰다.

1975년부터 TBS '코미디만세' '고전 유머극장' 등 배씨의 출연작을 연출했던 김웅래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는 "배 선생은 국민 코미디언이자, 후배 연기자들까지 웃기는 분위기 메이커, 연기를 가르치는 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분"이라고 추억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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