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관련 세미나만 가면,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책선거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꼭 나온다. 그러나 불행히도 선거 결과는 정책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고 표를 던지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도덕성인가. 후보 2, 3명이 맞붙는 대선이면 모를까, 전국 단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지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개별적인 도덕성은 전체 판세와는 무관하다.
견제심리 짙지만 구도는 여당편
정책선거, 도덕성이라는 당위와는 달리 현실 정치에서 선거 판도를 좌우하는 것은 정치흐름과 구도다. 6ㆍ2 지방선거를 앞둔 흐름은 일단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라 할 수 있다. 역대 선거를 보면, 대선 직후 벌어진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의 승리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정권 중반기에 접어들면 권력의 힘을 저어하는 정서가 퍼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대선에 이은 98년 지방선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긴 2002년 대선에 이은 2004년 총선, 이명박 대통령이 압승한 2007년 대선에 이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모두 여당이 이겼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중반기에 치러진 2000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이 참패했다.
이번 6ㆍ2 지방선거에서는 어떨까. 외형상 한나라당 지지도가 민주당을 압도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40%를 웃돌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권력 견제심리가 팽배해 있다. 2008년 총선 이후 치러진 각종 재ㆍ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정당지지도에서 앞서면서도 연전연패를 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선거전문가들은 검찰이 움직이고 사정정국이 형성되면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지지도에 10% 정도 허수가 낀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지금 여론조사를 액면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구도는 어떨까. 가장 이상적인 선거구도는 이 쪽은 혼자고, 저 쪽은 여러 명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접전이 벌어지는 수도권에서는 구도가 결정적이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만 보면 야당에 유리한 구도인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사생결단하듯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錯視)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분당을 택하지 않는 한 양측 지지자들은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한나라당 안에서 맴돌게 돼 있다. 왜냐하면 세종시 논쟁에서 주연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이고 민주당 등 야권은 조연, 아니 심하게 말하면 엑스트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팬들이 주연을 버리고 엑스트라를 따르겠는가.
더욱이 야권은 지금 분열돼 있다. 세종시 문제의 당사자인 충청만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해를 박 전 대표가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만약 한나라당 후보가 친이라면 어렵겠지만 친박임이 확실하다면, 표가 갈린 자유선진당이나 민주당은 고전할 것이다.
야권의 '선거연합' 여부가 초점
수도권 구도도 현 상황대로라면 제1 야당인 민주당에 불리하다. 최근 격차가 벌어지긴 했지만 역대 선거에서 당락이 1,000~3,000표 차이로 갈렸던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골수지지표를 갖고 있는 국민참여당, 노동계층의 기반이 있는 민노당으로 표가 분산되면 결과는 야권의 참패로 귀결될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대안으로 전혀 인식되지 않고 있고 무기력하게 인식된 지 오래다.
반면 한나라당은 하고한 날 싸움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듯 친이와 친박이 각자 외연을 넓히고 있다. 무대에 오르지도 않은 배우들에게까지 애정을 보낼 정도로 국민은 한가하지 않다. 지금대로라면 정권 견제 흐름이 구도를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야권이 선거연합을 이룬다면 반전이 이루어지겠지만, 글쎄 현 야권 지도부가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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