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슬람 집권당과 세속주의 세력(군부ㆍ검찰)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터키에서 전ㆍ현직 군 간부들이 쿠데타 혐의로 대거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현지 언론은 22일 "전 공군 참모총장 이브라힘 피르티나 등 전ㆍ현직 군부 거물 50여명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검거됐다"며 "이들 세력에 대한 정부의 조사가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쿠데타 모의 세력이 받고있는 혐의를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정부는 2003년 군부세력이 작성한 문건을 빌미로 쿠데타 모의 세력이 이슬람 사원 두 곳에 폭탄을 매설하고, 그리스 폭격기가 터키 폭격기를 격추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박물관을 공격한 것처럼 가장해 친이슬람 정부에 타격을 주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사태는 단순한 쿠데타라기 보다는 세속주의(정교분리) 수호자를 자처하는 군부와 친이슬람 집권당 사이의 갈등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인 터키는 1920년대부터 공화국 창시자 케말 무스타파 아타투르크가 수립한 세속주의 전통을 지켜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2002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정의개발당이 친이슬람 정책을 표방하면서 엄격한 세속주의 세력인 군부 및 검찰 등과 대립해 왔다.
이 같은 대립은 지난주 정부가 극렬 세속주의 세력인 '에르게네콘' 연루자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과정에서 현직 검사마저 체포,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검찰 임면권을 지닌 판ㆍ검사 최고위원회가 체포명령을 내린 친정부 성향 검사들의 지위를 박탈해 검찰과 정부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군부 쿠데타 모의 사건도 세속주의 세력에 대한 친이슬람 정부의 기선제압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군부는 "2008년 집권 정의개발당의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요청한 것에 대한 보복이자 세속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당은 이번 기회에 군부는 물론 사법부를 완전 장악하려는 듯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22일 "사법제도를 개편하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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