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기 전 사람들은 그곳을 잘 몰랐다. 남태평양의 타히티와 헷갈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안쓰러운 나라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보고 겪은 것을 책으로 썼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사상 최악의 지진 참사가 터졌다.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이가 없는 카리브해의 작고 슬픈 나라, 아이티. 다큐멘터리 방송작가 정화영(38)씨가 대재앙 7개월 전 찾았던 그곳의 이야기를 담은 책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 줘> (강같은평화 발행)를 펴냈다. 아이티,>
"처음엔 직업적 이유에서 아이티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이티 다큐를 제작하던 옆팀 스태프들한테 10명의 현지 고아를 키우며 살아가는 67세 한국인 여성 목사 얘기를 듣게 됐죠. 얘기 된다, 언젠가 한번 만나고 싶다, 이런 차원이었는데, 일에 지친 어느 날 문득 아이티가 떠오르더군요."
정씨는 정신 없이 달려오던 삶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무작정 아이티로 떠났다. 14년간 쉬지 않고 방송작가로 일해온 터였다. 지칠 대로 지친 정씨를 '엄마 목사' 백삼숙씨가 받아줬다. 백 목사가 10명의 고아들과 신학생들을 양육하는 '사랑의 집'에서 정씨는 짧고도 긴 한 달간의 기숙생활을 시작했다.
배가 꺼지지 않도록 진흙쿠키를 씹어대는 아이들, 무급식모로 노예처럼 살아가는 서너 살의 꼬마들, 길거리에 벌거벗긴 채 버려진 고아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으로 남겼다.
"아이티가 어떤 나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아이들이 고통스런 나라'라고 얘기해요. 한번은 거기서 피부병과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가 미친 듯이 흙을 파먹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너무 놀라 왜 그런지 물어보니 아이 엄마가 임신 중에 진흙쿠키를 너무 많이 먹어서 아이가 흙 말고 다른 건 먹을 줄 모르고, 먹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교육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싶어 가슴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이티에서는 3초마다 한 명씩 아이들이 죽어간다.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아이들은 고열 한번만 앓아도 사망 확률이 100%였고, 어른들은 낯선 외지인의 팔을 붙들고 국제사회에 호소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가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막막할 때도 여러 번이었다.
완공세를 물기 싫어 짓다 만 채 입주하는 건물들, 더위를 피해 산 위에 무너질 듯 위태롭게 지어올린 집들을 보면서 '엄청난 지진이라도 나야 세상이 이곳을 돌아다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진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았어요.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죽음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선 의미 있는 죽음이기도 해요."
스타벅스에서 '아이티를 후원합시다' 같은 광고물을 보면 눈물이 찔끔 난다는 정씨는 앞으로도 백 목사를 도우며 아이티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의 집에서 한 달간 동고동락하며 지낸 피부 좋아지는 비누를 갖고 싶은 엔나, 우주선 비행사가 되고 싶은 뤼제, 축구선수 지망생 조지…, 모두 이미 정씨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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