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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월급쟁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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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월급쟁이 아이돌

입력
2010.02.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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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공중파 방송에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졌다. 연예인들이 나와 일상적인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만 3개 텔레비전 방송의 4개 채널에서 1주일에 10편 이상이고 연예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활동을 따라하면서 일상성을 모방하는 프로그램이 5편이 넘는다.

이런 방송프로그램에 나타나는 연예인들의 '일상'에는 진짜와, 대외적으로 진짜로 표방한 것이 섞여 있겠지만 그게 진짜인지 대외적인 포장인지와 상관없이 이들의 수다를 들으면 일반인들보다 연예계 내부의 위계질서가 더 엄격하다는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선배들한테 인사를 안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인지도 놀랍고, 방송이라면 지위가 높고 낮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객관적인 호칭을 써야 하는데, 혹시라도 결례가 될까 전전긍긍하면서 선배를 극존칭으로 부르는 방식이 기이할 지경이다.

개성과 정체성 잃은 '꼭두각시'

가장 이상한 것은, 젊은 아이돌들이 보이는 거의 꼭두각시와 같은 태도이다. 모든 아이돌이 연습생이라는 이름 아래 어린 시절부터 기획사의 손 안에서 컸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들은 스스로가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개체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이 말들을 한다. "사장님이 이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런 것 사장님이 싫어하세요." 이런 말은 아주 흔하게 듣는 것이고 연애조차 사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기획사에 묶인 월급쟁이들같다.

언제든 기획사 사장이 잘라 버리면 재능이 있건 없건 연예계에서 끝나 버린다는 생각이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상파의 연예 프로그램 자체가 기획사의 입김 아래서 움직이는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 씨엔블루가 밴드냐, 아니냐로 논쟁이 일었지만 진짜 밴드란 동네 청년들이 의기투합해서 모이는 것이지 회사가 모아주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기타를 치는 아이돌 그룹일 따름이다. 진짜 밴드란 대중의 인기가 없어도 제 흥에 겨워 유지되는 것이고, 그런 밴드가 인디밴드라는 이름으로 지역 곳곳의 소공연장에서 인기를 얻고 그걸 바탕으로 기획사의 눈에 띄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경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매니저는 팬들을 폭행하게 되고 당사자들은 멀쩡히 보면서도 말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측은한 월급쟁이 아이돌들의 모습이다.

영국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서 한 물 간 늙은 가수 빌리 맥은 왕년의 인기곡을 크리스마스용으로 개작해 방송을 새삼 타게 된 후 자기 노래가 1위를 하면 옷을 홀딱 벗고 공연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해서 아이돌들과의 인기격차를 줄여나간다. 마침내 정상의 아이돌과 경합대상이 되어 텔레비전에 공동 출연하자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청소년 여러분 마약 사지 마세요."왕년의 악동이 개과천선했나 하는 사회자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인기가수가 되면 공짜로 생겨요."

이 장면이 재미있는 것은 그가 대중의 기대치를 알고 있고, 동시에 그걸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사에 출연기회를 구걸해야 하는 빈털터리 신세이면서도 방송사가 제시하는 잣대에 항복하지 않았다. 마약이 부도덕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인기 가수들이란 그다지 도덕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사람이 방송에 나온다고 느닷없이 도덕적이 된다면 그는 결국 돈에 팔려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린 것이 된다. 비록 얻을 것이 없어도 여전히 악동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는 그에게서 대중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사는 한 인간을 느낀다.

팬만 무서워하는 연예인 되길

이런 해방감이 바로 대중이 예술이나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예술이나 대중문화가 사랑을 받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집단이 제시하는 가치관으로부터 좀더 자유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해방감을 대리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배가 무서운 세상, 돈 주는 사장님이 무서운 세상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제발 대중연예인들은 돈도 선배도 무섭지 않고, 오로지 진짜 팬들이 무섭고 자기가 진짜 예술을 하지 못할까만 두렵다고, 척이라도 해주기 바란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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