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앞의 성과만 급급 기초연구는 '찬밥'… 교육+과학 시너지 실종
박현욱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요즘 돈 때문에 고민이다. 필요한 액수는 3억원. 국내 유일의 연구 전용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의 1년 운영비이지만 마련하기가 만만찮다. 이 장비는 지난 10년간 뇌과학은 물론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등 기초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최근 운영비 부족으로 정상가동에 위기를 맞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 저하가 여실히 드러나는 사례다.
'보이는' 정책에 밀린 기초연구
KAIST fMRI에 정부 지원 운영비가 끊어진 건 2008년 4월. 그 이후 다른 연구비에서 근근이 충당하다 보니 업그레이드는커녕 현상유지도 버거운 실정이다. 박 교수는 "교과부는 운영비까지 줄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뇌 연구가 2∼3년 내에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뇌 연구 예산은 늘었다. 정부는 2008∼2017년(제2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 뇌 연구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목표다. 1998∼2007년(제1차) 투자액은 3,096억원이었다. 제2차 계획에는 한국뇌연구원(가칭) 설립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뇌 전문 연구기관을 짓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는 정책에 신경 쓰느라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기초연구 지원은 소홀히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체 연구개발(R&D) 예산 역시 지난해 12조3,000억원에서 올해 13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과학계의 반응은 생각보다 차갑다. 현 정부가 중점을 두는 R&D 분야는 우주기술과 원자력 수출, 녹색연구다.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보이거나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초과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연희 서울여대 환경생명과학부 교수는 "정부가 확 드러나는 성과만 원하니 수십 년 뒤의 기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부질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불안
교과부는 지난달 세종시를 중심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를 조성해 일본이나 독일에 필적하는 기초과학연구원과 국제과학대학원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기초과학 거대장비인 중이온가속기도 함께 들어설 전망이라 과학계의 관심은 적지 않다. 특히 '교육'과 '과학'을 한 곳에 모으는 시도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성격이 잘 반영된 계획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계 한편에선 이런 지각변동이 언제 어떻게 있을지에 대해 막연히 불안해하는 시각이 많다. 새 연구기관의 정체성과 기존 유사 연구기관의 관계, 새 대학원의 교수와 학생 영입 등 현실적인 사안에 대해선 거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이공계 대학 교수는 "과학벨트가 실현되려면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갖고 정부가 과학계와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연연 대학 통합 시도, "힘든 한 해"
지난해 3월 첫 신입생을 받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형태다. 정부출연연구기관(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대학(충남대)이 공동으로 투자·운영한다. '따로 놀던' 연구와 교육을 융합하기 위해 현 정부가 2008년 10월 설립했다.
하지만 이 대학원에 첫 발을 디딘 교수와 학생들은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교수들은 연구원과 대학의 상이한 제도를 모두 적용 받아 소속이나 연구비 처리 등 행정적인 측면에서 혼란이 많았다. 정년을 비롯해 양쪽 직장문화가 다르다는 점도 실감했다.
이 대학원에선 학연공동지도교수제가 처음 실시됐다. 연구원과 대학 소속 교수 각 1명이 한 학생을 지도하는 제도다. 학생 입장에선 지도교수가 2명인 셈이다. 이 대학원의 한 교수는 "이쪽 학생도 저쪽 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느낌이 들었는지 학생들이 참 힘들어했고, 교수들 중에도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정광화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1년간 겪은 문제점을 교과부도 인식했으니 점점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과위에 '힘' 실어줘야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 근본적인 원인은 과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중장기적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교육과 과학 전담 부처가 따로 분리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이유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국가 R&D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의 위상이라도 높여야 한다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과학정책의 방향과 예산은 과학계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국과위에서 심의·의결한다. 그러나 신용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국과위 운영위원은 "국과위에 예산안이 올라왔을 땐 이미 관련 부처들이 그에 맞춰 시행계획을 짠 상태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과위를 통해 과학계의 의견이 국가 정책에 반영되려면 예산의 조정과 배분, 평가기능이라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는 "이번 정부는 과학계의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하향식' 정책을 내놓는 경향이 크다"며 "정부와 과학계의 통로가 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 교육과학기술부 '무늬만 통합'… "업무특성 달라 효율성 저하"
"한 마디로 힘 빠지죠. 큰 틀이 안 움직이니 밑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결정이 안 되거든요. 솔직히 '(일을) 해도 안 되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에요."
교육과 과학 분야 업무를 모두 경험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공무원은 최근 조직 내 분위기를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장ㆍ차관을 비롯한 교과부 간부들이 대부분 교육 현안에 파묻혀 지내다시피 하다 보니 과학 분야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지난해 말 연구성과물을 '특허괴물'이라 불리는 외국 법무법인에 뺏기는 시급한 상황을 장관에게 보고할 때도 과학 분야의 담당 공무원들은 '타이밍'을 맞춰야 했다. 장관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같은 교육계 현안 문제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과부는 겉으로는 옛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 출신 공무원들이 서로의 분야를 오가며 무난히 통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무늬만 통합' 쪽에 가깝다. 전혀 다른 두 부처의 업무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게 교과부 공무원들의 속내다.
교육 분야는 각 지방 교육청 등 워낙 관련 조직이 많아 인사 순환이 빠르고, 당장 처리해야 할 시급한 현안이 많다. 세부적인 제도까지 꼼꼼히 챙기고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게 일을 매듭짓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학 분야 공무원은 연구 행정 업무도 있지만 국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R&D 중장기 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 과학자와 자주 만나 토론하면서 전문지식과 안목을 넓히고 창의적인 정책을 적극 발굴해내야 한다.
양쪽 능력을 적절히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게 시너지 효과겠지만 현실에선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교육과 과학을 오간 한 간부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양쪽 일이 워낙 다르다 보니 다른 쪽 업무를 파악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털어놨다. 이는 결국 업무의 효율성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터.
개인적으로도 교육과 과학 양쪽 경험이 '득'이 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과학 쪽 업무를 하다 최근 교육 분야로 발령 받은 한 공무원은 "어느 한쪽에 집중하는 게 낫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면 (경력 관리 측면에서) 일이 안 풀릴 것 같다"며 걱정했다.
그렇다고 참여정부 시절과 같은 구조로 되돌아가자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머쓱하다. 서로의 단점을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분리하고, 고등교육은 현 정부의 원래 취지대로 연구개발과 통합 운영하는 게 효율적일 거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교육과학기술부 '무늬만 통합', "왜 합쳤는지…" 모임도 끼리끼리
옛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 공무원들은 옛 과학기술부 출신 직원들 만큼 통합에 부정적이다. 통합 2년을 맞지만 시너지 효과를 거론하기는커녕 "왜 합쳤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들이 많다.
교과부가 '한 지붕 두 가족'을 의식해 내놓은 첫 통합 효과 유발 카드는 이른바 융합 인사였다. 교육 분야를 다루는 국(局) 중 최소 1개 과의 과장은 과기부 출신으로 앉히고, 반대의 경우 교육부 출신 과장이 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인사는 교육ㆍ과학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판이하게 다른 업무 특성을 무시한 채 무조건 섞기를 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교육부 출신의 한 과장은 "과기 분야의 네트워킹이 되어 있지 않아 업무 추진에 애로를 겪을 때가 한 두번 아니다"고 전했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교육ㆍ과학 공무원 간의 유대 관계도 찾기 힘들다. 한 과기부 출신 서기관은 "근무 시간이 끝나면 교육은 교육부 출신끼리, 과학은 과기부 출신끼리 따로 저녁모임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위간부 일수록 이같은 '배타성'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부 출신의 국장급 이상 고위간부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강남에서 저녁모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교육-과기 통합 작업에 깊숙이 간여했던 A대 B교수는 "사실 융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며 "통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수준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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