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세월의 상처를 딛고 새만금이 자라고 있다. '아리울(Ariulㆍ물의 터전)'이라는 예쁜 이름도 생겼다. 정부는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의 중심지이자 세계적 명소로 만들기 위해 종합실천계획을 확정해 새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거대한 탄소저장소 구실하게
나는 한국시론(지난해 11월 7일자)을 통해 약 1억 톤(깊이 30cm)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새만금을 탄소 관리의 컨트롤 타워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역경을 극복한 우리의 노력과 미래의 비전을 담은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가 녹아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탄소이야기는 '물의 터전'이란 꿈을 담은 새만금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야 한다.
토양을 '자연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생각하는 과학자로서 새만금 종합실천계획이 간과한 시간의 개념을 짚어보고자 한다. 기본구상 당시 70% 정도였던 농업용지 비중은 30% 정도로 축소했고, 산업ㆍ국제업무ㆍ관광레저ㆍ생태환경용지 등을 늘려 '명품복합도시'를 조성토록 했다. 이전보다는 분명히 구체화하고 발전적인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간척지라는 황량한 대지가 어떻게 생태적으로 안정되고 생산성을 회복해 가는가를 연구해온 나에게는 상당히 공허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종합실천계획 역시 십 수년 동안 환경파괴 논쟁과 이해집단의 충돌로 꼼짝할 수 없었던 이 황무지 위에 너무나 쉽게 장밋빛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잃어버린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가 우리를 더욱 조바심 내게 만들고 있다는 걱정이다.
우리 속담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중재, 즉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지혜야말로 새만금의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밝히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종합실천계획은 개발을 조기에 가시화하여 하루 속히 강력한 개발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5대 선도사업'을 구체화하고 있어, 시간에 대한 간과가 우리의 꿈과 상상을 어처구니없이 짓밟아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 없지 않다.
일에는 순서가 있게 마련이다. 새만금 개발도 시간이 간척지에 허락하는 범위에서 순차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나는 새만금을 미래의 초록빛 희망이 피어나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어야 하고, 거대한 탄소저장소 역할을 하도록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새만금의 토양구조를 발달시키며 우리가 살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그 위에 탄력적으로 명품복합도시, 수질 대책 및 수자원확보 계획을 그려야 한다. 새만금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개발이 되기 위해서는 토양에 대한 전문적 고려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황량한 간척지를 복원하는 데 시간이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는 서산간척지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쌀이 남아돈다는 단순한 이유로 논이 지닌 간척지 복원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 굳이 논이 아니어도 좋다. 논이 지닌 효과적 제염 및 수자원 확보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가능할 터이다.
토양 되살리기엔 긴 시간 필요
그러나 논은 상당히 많은 탄소를 다시 토양으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 이는 초기에 새만금의 생태복원력을 높여, 새만금 개발이 순항할 수 있도록 보장된 항로를 제공하게 된다.
오랫동안 지구에 말없이 존재해 왔으나 우리가 쉽게 간과해 왔던 탄소순환의 고리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새만금이다. 그 잃어버렸던 고리가 우리 앞에 드러났는데, 우리는 또다시 무심하게 넘겨버릴 것인가. 잃어버렸던 상실의 고리가 다시 연결되는 데는 그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희명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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