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21세기 아톰 레이스'(21C Atom Race)에 돌입했다.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고 기후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너도나도 원전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원전 3대 강국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원전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안전성 논란과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쌓여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망, 프랑스가 원전 강국이 된 비결, 우리 원전 산업의 경쟁력과 과제 등을 파리와 빈 등에 있는 원자력 관련 국제기구에 대한 현장 취재를 통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15일 이재환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이하 이사장)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리 소콜로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하 사무차장)을 만나는 현장에 동행 취재했다. 1956년 창설된 IAEA는 전 세계 151개국이 가입한 원자력 관련 최대 국제기구이다.
이사장-원전 르네상스의 가장 큰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무차장 "최근 세계적 변화가 원전에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에너지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2008년처럼 국제 유가가 급등,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특히 원전의 가동률이 80% 이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가동률이 사실상 20%에 불과한 풍력의 4배에 달한다. 저렴한 전기를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원전 건설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60개국이 원전을 에너지 믹스(국가별 에너지원 구성 비율)에 포함시킨 상태이며, 12개 국가가 원전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2030년엔 20개 이상의 새로운 국가가 원전 프로그램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장-그러나 우라늄 문제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무차장 "물론이다. IAEA는 원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뿐 해결책을 강요하진 않고 있다. 나라마다 모두 상황이 다르고 국민 수용성에서도 차이가 나는 만큼 답을 줄 순 없다."
이사장-한국은 지난해말 아랍에리미리트연합(UAE)에서 원전 4기를 수주했고, 앞으로 원전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코자 한다. 한국이 원전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 지 조언을 듣고 싶다.
사무차장 "한국의 UAE 원전 수주는 IAEA에서도 깜짝 놀란 사건이다. 특히 한국이 원전 경쟁력을 스스로 창조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원전 가동률도 높고, 건설 단가나 공기도 매우 짧아 경쟁력이 높다. 이제 앞으로는 이런 경쟁력을 실제 건설 및 운영에서 계속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새로 원전을 도입하는 국가들이 어떤 조건들을 요구하고 있는 지를 잘 살펴 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원전 수주 입찰 조건으로 3년 이상 원전 가동 경험과 가동률 75%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각 국가의 특별한 조건을 맞춰줘야 한다. 한국은 또 아시아에 위치해 있다는 지역적 강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56개의 원전 중 37개가 아시아지역에서 건설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지난해 착공된 10개의 원전 중 9개가 아시아에 있다. 가까운 곳에 있다면 운송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사장-원전의 평화적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용도를 높여야만 한다. 1992년 설립된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돕기 위한 정부 산하 기관이다. 원자력 문화의 출발이 결국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원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과 IAEA가 아시아 지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원자력 탐구 올림피아드를 함께 개최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원전 도입 대상국을 대상으로 원자력 안전성 심포지엄을 열고, 대학생을 주축으로 원자력 문화 교류단을 결성하는 것도 공동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사무총장 "매우 흥미롭고 합리적인 사업이라 생각한다.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프로그램 등 IAEA의 기존 사업들과 연계,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가지 사업의 구체적인 안을 논의할 창구를 정해 함께 추진토록 하자. 한국이 원자력 산업뿐 아니라 원전 문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 깊다."
빈=글ㆍ사진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IAEA '한국인 파워'
우리나라가 UAE 원전을 수주, 경쟁력을 입증한 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한국인 파워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원전 강국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IAEA에 따르면 2,300여명의 사무국 직원 중 한국인은 모두 36명이다.
이중에서 가장 고위직은 IAEA 사무국의 핵심 요직 중 하나인 원자력에너지부 원자력발전국을 맡고 있는 박종균 국장. 원전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박 국장은 원자력연구원에서 30여년간 원자로시스템 개발 업무에 몸 담았다 지난해 10월 취임했다.
박 국장은 "원전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원자력 인력이 될 것"이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난 30년간 원전을 사실상 방치한 결과 후진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원자력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음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원자력 인력 양성 국제회의도 전세계적으로 원자력 인력이 어느 정도 부족한 지를 조사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박 국장은 "최근 원전 관련 정책 담당자가 대부분 러시아 유학생 출신인 베트남이 2020년 가동 목표인 원전을 사실상 러시아로부터 도입키로 결정한 점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말했다. 미래 원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국장과 함께 근무하는 강기식 박사도 빼 놓을 수 없는 IAEA의 한국인 인재다. 그는"원전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험"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가 지난 30년간 원전을 건설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인 반면 한국은 지난 20년간 해마다 원전을 건설하며 상당한 경험을 축적했다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원전을 수입하는 나라 입장에서 보면 설계, 구매, 건설, 운영까지 안정적인 공급망이 정해져야 한다"며 "이런 체계적인 공급망을 갖고 있는 나라는 현재 한국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강 박사는 또 "원전이라는 게 경제적인 요소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경제적 조건이 충족돼야 정치적 요소도 고려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 박사는 이에 앞서 국민 수용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란 점도 지적했다. 그는 "필리핀과 아르헨티나에서 원전을 짓다가 나중에 여론이 악화돼 중단한 적이 있다"며 "칠레처럼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진행한 뒤 이에 따라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최근 추세"라고 덧붙였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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