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의 과장된 화장과 발레복을 벗은 무용수들은 브라운관 속에서 저마다의 장기를 늘어놨다. 고난도 리프트와 다리 찢기는 물론이고, 코믹한 클럽 댄스까지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고고할 것 같은 발레리나(노)들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KBS 2TV '해피 선데이'의 '1박 2일' 코너에 14일부터 3주째 출연중인 유니버설발레단 얘기다. 첫 방송이 나간 뒤, 드미 솔리스트 한서혜는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 개인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까지 겪었다. 순간시청률 40%대를 넘는 인기 오락프로그램에서 발레단의 존재를 제대로 알린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도 TV에 출연했다. 15일 KBS 1TV '설특집 명사 스페셜 노래대결'에서 트로트곡 '어머나'를 불렀다. 정ㆍ재계,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출연한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발랄한 선곡이었다.
최근 발레단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이전에는 유명 무용수가 발레 해설을 맡거나,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 풍경을 구경시켜 주는 등 소극적인 접촉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 발레 무용수들은 방송, 뮤지컬 등 대중적인 무대에 서슴없이 등장하면서 대중과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지난달 공연한 뮤지컬 '컨택트'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의 간판 무용수들이 탐냈던 작품이다. 출연까지 성사된 것은 '노란 드레스의 여인'을 맡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한 명이었지만 오디션을 보거나 출연 이야기가 오간 무용수가 여럿이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2막 남자 주인공을 맡은 정주영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이기도 했다.
민간 사진동호회와 교류하며 자신들을 알리려는 독특한 움직임도 있다. 서울발레시어터는 지난해 6월부터 카메라 동호회원들을 연습실이나 백스테이지에 초대해 사진을 찍도록 허용, 그들이 여는 사진전과 입소문을 통해 발레단의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올해는 대기업 사진동아리와의 연계도 추진 중이다.
또 국립발레단은 지난 연초에 발레단 소식과 각종 공연 정보를 담은 후원회 소식지를 창간했으며,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해부터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1박 2일' 출연을 신청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엄재용은 "발레는 연극이나 뮤지컬 등에 비해 관객층이 한정돼 있어 대중과의 소통에 늘 '고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발레 무용수에 대한 편견을 깨고, 발레가 일반인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로 거듭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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