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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시문집 '정유각집' 첫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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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시문집 '정유각집' 첫 완역

입력
2010.02.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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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1737~1805), 청장관 이덕무(1741~1793)와 함께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들을 가리키는 이른바 '연암 그룹'의 핵심 3인 중 한 사람인 초정 박제가(1750~1805)의 시문집 <정유각집(貞蕤閣集)> (돌베개 발행)이 처음 완역 출간됐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6명의 후배, 제자들과 함께 6년 만에 번역했다.

모두 3권(시 2권, 산문 1권)으로 묶인 <정유각집> 은 이미 번역된 <북학의(北學議)> 를 제외한 박제가의 시문집 전체를 국역한 것으로 1,721수의 시, 123편의 산문이 실렸다. 박제가의 시문집은 196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정유집> , 1986년 여강출판사의 <정유각전집> , 1992년 아세아문화사의 <초정전서> , 2001년 민족문화추진회의 <정유각집> 등 영인본만 4종류가 나왔지만 전작(全作) 번역은 최초다. 박제가의 시문 자체의 분량이 방대하고 그가 문장에서 복잡한 전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집에는 각주만 3,500개 이상 달렸다.

<정유각집> 의 완역은 <북학의> 를 중심으로 사상가로서의 면모에만 연구가 집중됐던 박제가를 문학가로서 조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제가는 한문학사에서 유득공, 이덕무, 이서구와 함께 조선 후기의 명문장가를 칭하는 '후(後) 4대가'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보인 인물이었다. "18세기 시단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의 시는 지적이면서도 예민한 감수성을 솜씨있게 드러낸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일찍부터 문재를 과시했는데 그의 산문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묘향산 소기'는 17세 때 쓴 작품이다.

박지원의 문장이 복잡하고 은유적이라면, 박제가의 문장은 남에게 굽히기 싫어하고 직정적인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 거침이 없다. 1793년 박제가의 문체에 관한 상소가 제기되자 정조는 그에게 자송문(自頌文ㆍ반성문)을 지을 것을 명령했는데, 박제가는 '비옥희음송'이라는 이 글에서도 자신의 문학관을 고집한다. 문장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정조에게 그는 "배움이 지극하지 못한 것은 진실로 신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천성이 다른 것은 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4차례나 중국으로 연행(燕行)했던 박제가는 북학파 가운데서도 국제적 감각이 남달랐다. 가령 그가 60명의 인물을 평가한 인물시편인 '장난삼아 왕어양의 세모회인시 60수를 본떠 짓다'는 박지원, 이덕무 같은 지인들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학자, 상인들까지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다.

시문집명으로 쓰인 '정유각'은 박제가의 당호. '정유'는 소나무의 별칭인데, 정조가 박제가 집 마당의 소나무를 칭찬하고 이를 '어애송(御愛松)'이라 명명한 데서 연유한다.

정민 교수는 "중국과 조선,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들과 활발히 교유했으며 나아가 제자 김정희에게 계승된 박제가의 국제감각은 동아시아적 전망의 수립이라는 요즘 학계의 화두와 관련해 조명할 가치가 높다"며 "박제가의 작품세계의 전모가 소개된 만큼 그의 학문, 사상, 문예 전반에 관한 본격적 연구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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