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차장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기마인물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이 조형물이 바로 경주에 있는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기마인물상(騎馬人物橡)을 크게 재현한 것이다.
기마인물상 앞에는 '하인으로 보이는 기마인물형 토기로 신라시대의 복식과 기마풍습, 마구의 격식 등을 볼 수 있으며 동시대의 양반으로 보이는 기마 인물상과 한 쌍으로 출토되었음'이라는 간단한 설명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이 기마인물상이 역 승강장에 놓여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에 있지만 지하철 3호선이 완공될 당시에는 현재의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었다. 그래서 지하철 경복궁역이 국립중앙박물관역 구실을 하게 되었고 아울러 지하철이 운송 수단이지만 고대에는 말이 사람과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 구실을 했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경주 구시가지 중심에는 신라시대의 큰 무덤들이 많은데 크게 3구역으로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즉 황남동무덤군, 로서동무덤군, 로동동무덤군으로 나누어진다. 알제 강점기인 1930년대 경주박물관에서 신라무덤 분포도를 작성하면서 번호를 매겼는데 155호가 마지막 번호였다.
광복 후 최초의 금관이 출토된 무덤인 천마총이 바로 155호 무덤이고 두 번째 금관이 출토된 황남대총이 98호이다. 그래서 지금도 천마총은 155호 고분, 황남대총은 98호분으로 불린다.
이 기마인물상은 1924년 발굴되었다. 조사결과 또 하나의 신라 금관이 출토되어 일본인들을 흥분하게 했지만 이미 금관총이란 무덤 이름이 있기 때문에 고심 끝에 금령총(金鈴塚)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유는 금관의 태에 좌우대칭으로 늘어뜨린 장식 줄에 금방울을 하나씩 달고 있어 금관에 금방울이 달려 출토된 무덤이란 뜻에서 금방울무덤 즉 금령총인 것이다.
그러나 출토유물 가운데 금관보다도 더욱 눈을 끈 것이 바로 토제품인 기마인물상 2점이었다. 높이는 23㎝ 내외지만 말의 모습과 갑옷을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쓴 말 탄 사람의 모습 등은 신라인들의 복식과 아울러 말갖춤까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관보다도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는 판단에서 광복 후 금관은 보물(제 388호)로 그리고 이 유물은 국보(제 91호)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2점 가운데 1점은 관과 같은 모자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는 반면 다른 1점은 관이 아닌 상투형태의 모자에 어깨에 등짐을 한 형태를 보이고 있어 최초 발굴 당시 주인과 종의 신분으로 해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주인과 하인의 관계보다는 다소 신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직위에 따른 차림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아울러 이 특수 토기는 내부가 비어있고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이 주전자의 꼭지 구실을 하고 있어 신라 귀족들의 주전자로 해석되고 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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