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언어 폭력과 인간 이기심 그린 신시컴퍼니의 연극 '대학살의 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언어 폭력과 인간 이기심 그린 신시컴퍼니의 연극 '대학살의 신'

입력
2010.02.23 23:09
0 0

"애들 문제로 유치하게 문제를 부풀리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요. 만약 반대로 브루노가 우리 아들 페르디낭의 이빨을 두 개 부러뜨렸다면 저나 제 남편은 글쎄요, 아마…."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신시컴퍼니의 연극 '대학살의 신(神)'은 이 시대 부르주아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위선을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11살짜리 아들끼리 놀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싸웠다. 이빨을 부러뜨린 아이의 부모가 상대 부모를 집으로 초대해 잘 지내자며 점잖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사회, 정치 문제가 끼어들면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진다. 대화에 열이 올라 서로 안 지려고 옹색한 논리를 굽히지 않다 보니, 결국에는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난 학살의 신을 믿습니다. 시간의 어둠이 걷힌 다음부터 세상을 끊임없이 지배해온 신이죠." 아이들은 원래 싸우며 크는 법이라고 때린 아이의 부모가 점잖게 말하자, 얼굴이 퉁퉁 부은 아이의 아버지가 도저히 울분을 못 참겠다는 듯 쏟아내는 일전불사의 뜻이다. 이제 상식이니 교양이니 하는 것은 명함 내밀기도 힘들게 됐다.

지난해 이 연극이 토니상에서 연극상, 여우주연상, 연출상 등 3개 부문을 따낸 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허위의식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반전의 연속은 중견 연출자 한태숙씨의 의욕을 자극하기 족했다. 한씨는 "대본 읽기만으로도 즐거운 연습"이라며 무대 만들기에 자신을 표한다. 지난해 '도살장의 시간' 등 날카로운 메시지와 실험의 무대를 추구해 온 한씨를 생각한다면 거의 표변이다.

한씨는 "싸움할 때면 난장판 되는 우리 국회와 전혀 다를 바 없다"고 무대를 빗댔다. 그는 "연출 작업을 해나갈수록 대본 속에 숨은 말의 재미를 발견한다"며 "유럽 특유의 유머 감각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툭툭 주고 받는 잽이 절묘해요. 타이밍의 문제에 매우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서울여대 불문과 임수현 교수의 번역문은 현재 한국인의 일상 언어에 충실하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보다 입에 붙는 한국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연출자로 보면 최대의 원군은 출연 배우들이다. "쟁쟁한 배우들인데다 연기 욕심이 보통 아니죠." 일 중독증 변호사 알랭 역에 박지일, 작가 베로니카 역에 오지혜가 한 커플이다. 여기에 맞서는 것이 자수성가한 사업가 미셸 역의 김세동, 타인의 시선에 항상 신경 쓰는 자산관리사 아네트 역의 서주희 커플. 두 쌍이 펼치는 연기 대결이 볼거리다.

제목의 '학살'은, 역사는 폭력의 연속이라는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려 알랭이 끌어들이는 억지 논리다. 김세동씨는 "미셸은 단순하며 일찍 폭발하는 서민적 캐릭터"며 "누구나 살면서 갖게 되는 위선을 일상 속 소통의 문제로 유쾌하게 풀어 보이겠다"고 말했다. 4월 6일~5월 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577-1987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