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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23> 허준(許浚)의 출생과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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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23> 허준(許浚)의 출생과 경력

입력
2010.02.2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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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은 <동의보감> (東醫寶鑑)을 지은 허준이 산청에서 낳았다고 선전한다. 그리고 명의 유의태(柳泰義)가 그의 스승이었다고 주장한다.

허준이 산청에서 탄생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없다. 한의학자 노정우는 답사를 통해 허준의 선대는 대대로 중부지방에 거주했는데 할아버지 허곤(許琨)이 경상우수사를 지냈고, 그 할머니가 진주유씨인 점에 근거해 허준이 어렸을 때 산청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에 유의태(柳義泰)라는 신의(神醫)가 있었는데, 그가 허준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청에서 태어난 유이태(劉以泰)는 숙종 대에 활동한 다른 사람이다. 거창유씨인 그는 1652년(효종 3)에 태어나 <마진편> (痲疹篇)을 지은 100년 뒤 사람이다. 그런데 이은성이 이를 토대로 소설 <동의보감> (창작과 비평사)을 써 허준이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해 명의가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허준은 무과에 급제해 용천(龍川)부사·부안군수를 지낸 허논(許碖)과 그의 양첩(良妾) 영광김씨 사이에서 1539년(중종 34)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양첩 서녀(庶女)였기 때문에 허준도 서자인 셈이다.

허준의 출생지는 양천허씨의 세거지와 가깝고 그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파주인지, 생모의 거주지인 전라도 담양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가 <미암일기> (眉巖日記)를 쓴 담양출신 유희춘(柳希春)과 가까운 것으로 보아 담양 사람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 대개 외가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고, 유희춘이 허준을 생모 영광김씨와 연관시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출생지와 생장지가 담양일 가능성이 크다.

허준은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의생(醫生), 혹은 심약(審藥)을 지내다가 20~30대에 의술로 이름이 나 서울로 진출한 것이 아닌가 한다. 허준을 내의원 의원으로 천거한 것도 유희춘이다. 1569년(선조 2) 윤 6월에 유희춘은 이조판서 홍담에게 허준을 내의원 의원으로 추천한 것이다. 어의 양예수(楊禮壽)를 소개해 준 것도 유희춘이다.

<양천허씨세보> 에는 허준이 의과에 합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방목(榜目)에는 보이지 않는다. 명의 양예수를 사사해 실력으로 어의(御醫)가 된 것이다. 1601년(선조 34) 선조는 허준에게 <태산집> (胎産集)· <창진집> (瘡疹集)· <구급방> (救急方) 등의 의서를 다시 편찬·번역하게 했다. 그리고 정유재란으로 중단된 <동의보감> 을 편찬하도록 했다.

그러나 1608년(선조 41) 2월에 선조가 죽자 수의(首醫)로서 책임을 지고 2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으나 <동의보감> (25권) 편찬에는 계속 관여해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했다. 그의 나이 71세 때의 일이다. 광해군의 보살핌 덕이었다. 허준은 광해군이 어렸을 때 두창(痘瘡)을 치료해 준 적이 있고, 선조를 호성(扈聖)한 공이 있으며, 선조의 유업인 <동의보감> 편찬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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