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인간이 오랫동안 부여잡고 답을 구해 온 화두다. 그만큼 답은 간단하지 않다. 폭력은 여러 사회 영역들이 누층적으로,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한 응축물이기 때문이다. 명쾌한 단 하나의 원인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폭력은 이처럼 구조적 복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정책 수단도 포괄적이어야 한다. 하나의 묘책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회 각 영역에서 해결책들이 동시에 동원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중학교 졸업식 후 벌어진 알몸 뒤풀이 때문에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이 사건 이후 다른 학교의 폭력적인 졸업식 뒤풀이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알몸 뒤풀이의 본질이 폭력이라고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포괄적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접근법은 매우 타당했다. 이 대통령은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경찰이 처리하겠다고 하는데 사건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며 “이는 문화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는 종합선물세트가 있어야 풀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22일 35차 라디오ㆍ인터넷 연설을 포함해 이후에도 거듭됐다.
그렇다면 종합선물세트에 꼭 들어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먼저 미디어에 대한 개혁책이다. 툭하면 서로 치고받고, 약한 사람을 왕따시키며, 조직 폭력배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그리는 것이 오늘날의 TV 드라마와 영화다. 컴퓨터 게임은 더 심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의 머리를 자르고 상대의 얼굴에 피를 튀게 하는 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은 폭력에 철저히 무감각해진다. 인터넷 세상 역시 이런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규제 기구들이 미디어의 폭력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손을 대야 하는데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제도상의 폭력 규제 수준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상업적 자유보다 우리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당장 규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학교도 확 바뀌어야 한다. 다 아는 얘기지만 학교는 폭력 공장이다. 폭력을 배우고 폭력을 확산하는 곳이다. 이런 한심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학교가 폭력에 대해 더 엄한 처벌을 해야 한다. 또 교사는 비록 작은 폭력이라도 절대 눈감지 말아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교내 경찰관을 도입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분출할 기회도 늘어야 한다. 24시간 공부 부담에 억눌려 있는 상황이 알몸 뒤풀이 같은 방식으로 폭발했을 수도 있다. 학생들이 잠깐이라도 유익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와 행사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 단체들이 적극 개발해야 한다.
얼른 꼽아 봐도 담길 내용이 이토록 많으니 대책을 강구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웬걸,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화려한 속도’로 정책을 만든다니 참말로 엄청난 내공이다. 이렇게 뚝딱 만들어진 대책이 이 대통령이 바라는 종합선물세트가 될 리는 만무한 일. 모르면 몰라도 외부에 보여 주기 위한 쇼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제라도 괜찮다. 여러 시민 단체나 정부 부처와 더불어 위원회라도 만들어 여유를 갖고 진득하게 아이디어를 구해 보면 어떨까.
이은호 정책사회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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