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이 그 맛인 것 같고, 잘 모르겠어요. 많이 마시니까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리고….”
두만강 건너 중국을 거쳐 단신 입국한 지 이제 11개월. 서울 공기조차 어색한 새터민 지향(가명ㆍ20)씨에게 커피 맛은 명동 골목길만큼이나 아직은 불편하고 난해하다. 마주 앉아 겸연쩍게 웃는 경미(20)씨도, 말은 안 하지만 지향씨랑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 창업 컨설턴트 이강천(창업시스템연구소 소장)씨의 격려가 이어진다. “매일 마시다 보면 금세 적응될 거야. 이왕이면 에스프레소를….” 탈북한 지 좀 되는 남혁(28)씨와 현화(26)씨도 한 마디씩 거드는데, 맏형 뻘인 정일(가명ㆍ30)씨는 나머지 넷을 쳐다보며 빙긋 미소만 짓는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동2가 청어람 빌딩 지하 강당. 카페 경영 사흘째 교육이 한창이었다. 새터민과 도시 저소득층 자활사업을 벌이고 있는 열매나눔재단이 탈북 청년 자립 프로젝트의 하나로 ‘새터민 카페’창업 사업을 시작했고, 공모를 통해 최근 ‘예비 사장님’ 다섯 명을 뽑았다. 정일씨 등은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이들이다.
이들은 컨설턴트가 선정한 서울 도심의 ‘잘 되는’ 카페 세 곳을 번갈아 돌며 온 종일 학습 중이다. 그 3주 과정을 통해 바리스타 기술과 영업 전략은 물론이고, 부드러운 미소까지 익혀야 한다. 이날 모임은 각자가 현장에서 듣고 보고 느낀 내용들을 토론하며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들의 카페는 내달 서울 명동 숭의여대 바로 앞 금싸라기 상권에 문을 연다. 40평 규모의 공간은 교회에서 무상으로 제공했고, 인테리어 등 제반 창업 비용 1억 원도 재단과 지역 교회, 한국은행이 마련했다. 개업 초기 석 달 정도는 전문 바리스타 두 명이 매니저로 가담하지만, 그 뒤로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목은 좋다지만 지척에는 이미 터를 잡은 카페들이 적지 않다. 계획단계에서 우려도 있었다. 자문을 해준 한 대형 커피체인업체 대표는 ‘새터민의 감성과 서비스업은 안 어울린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하지만 열매나눔재단 김범석 사무총장은 “우리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커피의 맛과 공간 인테리어, 서비스 면에서 최고를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단일 월급제로 시작하지만 실력과 성과에 따라 점차 급여를 차별화하고, 우수한 이들은 카페 주주로 발탁해 2호점, 3호점 등을 맡길 계획입니다. “카페는 인건비 등 경비를 뺀 순이익의 70%를 재투자해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재단측은 연내 4호점까지 열 계획으로, 새 공간을 물색 중이다. 김 사무총장은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머물지 않고 저소득층 자녀들의 생활ㆍ학습 지도를 겸할 ‘키즈카페’ 등 지역 문화사업의 거점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빌딩 1층 매장은 인테리어 공사로 부산했다. 내달 초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들은 매장에 투입돼 약 3주간 리허설을 겸한 시범 영업을 하고, 내달 24일께 본격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술 배우는 거 재미있어요. 열심히 할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2007년 입국해 평양예술단 무용수 생활을 1년 남짓 했다는 경미씨는 북쪽 어조로 김 사무총장보다 더 야물게 말했다. 곧 맞닥뜨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야문 억양은 하릴없이 명동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서서히 마모돼갈 것이고, 대신 내면은 더 악착스러워져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만만찮을 테지만, 쉽게 주저앉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진 포즈를 청하자 멤버의 분위기 메이커 현화씨는 쇼윈도에 즐비하게 선 마네킹 포즈를 흉내 내며 “도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라 말했고, 다들 화사하게 웃으며 명동의 새 봄 풍경 속으로 스몄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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